2019년 8월 2일 금요일

색즉시공 공즉시생에 대한 완벽한 논파 . JPG



 색즉시공 공즉시생

 색은 공이고, 공은 색이다. 라는 논제는 

 300년전 서양의 대철학자 칸트의 인간론적 관점으로 완벽히 논파 가능합니다.


 먼저 전제를 세워야 하는데

 부처님은 괴로움은 실제한다고 분명히 하셨습니다.

 이것을 전제로 어떻게 색즉시공 공즉시색이 논파가 되어가는 지 논리적으로 증명하여 알려드리겠습니다.


 먼저, 칸트의 철학을 이해하셔야 하는데

 칸트는 인간을 유한자와 무한자가 동시에 존재하는 단일체로 규정 하였습니다.

 이것은 색즉시공 공즉시생과 같은 개념입니다. 즉, 색은 공하고, 공은 색하지만 이 둘은 단일체인것에 서로 다른 드러남인것이죠.


 그런데 여기서 칸트는 선언 합니다.

 그렇기에 인간은 유한자도 아니고, 무한자도 아닌 중간지대 즉 제3의 지대라 할 수 있다.

 맞습니다. 그러면 같은 논리로 색이 공이 아니고, 공이 색이 아니라고 한다면 이것은 똑같이 제3의 상태가 되는 것이지요.


 슈뢰딩거의 고양이의 내용을 아시는분은 알겠지만 고양이가 죽어있지도 살아있지도 않은 상태가 바로 양자역학이라는

 새로운 상태가 존재하게 된것입니다.


 고로, 공즉시색 색즉시색이 사실이라 가정한다면, 부처님은 거짓말을 하시게 된 겁니다.

 왜냐하면 제1의 상태인 실체하는 상태, 제2의 상태 실체하지 않는 상태에서

 제3의 상태(색즉시공 공즉시생)의 상태가 존재하게 되는데 부처님은 제 1의 상태만이 진실이라 법하셨기 때문입니다.

 즉 색즉시공 공즉시색은 제1의 상태와 제2의 상태를 혼합하여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공의 개념을 만들고자 했으나

 결국 만들어진건 제3의 상태인 겁니다.


 하이데거의 형식철학적 관점에서 보면 사실 제3의 상태는 존재할 수도 없습니다. 사실

 왜냐하면 만약 색이 공하고, 공이 색이라고 한다면 이미 이 자체로 전체가 "색"이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쉽게 설명해드리자면

 색이 공하다라는 것 또한 결국 색이 되어버립니다. 반대로 공이 색이다라는 것도 결국 색이 되어버립니다.

 왜냐하면 "없다" 라는 것도 있음의 반대 존재상태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색이 공하다, 공이 색하다 라는 개념을 갖고 있는 자체가

 "색"이 되어버립니다.

## 간단하게


 1) 실체함 2) 실체하지 않음 에서


 실체하면서 실체하지 않는다는 명제는


 결국 실체하는 것이 되어버림;


 왜냐하면 실체하면서 실체하지 않는 것이 "실체" 가 되어버렸으니깐.


 결국 색이 된다 이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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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이데거의 형식철학 까지는 안가더라도

 칸트선에서 논파 가능합니다.


 참고로 이 제3의 상태로 인해 부처님이 설령 거짓말을 했다고 주장한다 쳐도

 이미 제3의 상태라는, 새로운 상태가 된 이상 본래의 의미는 퇴색되고 스스로 자가당착 논리모순에 빠져 끝나는 겁니다.


  그러니 부처님의 말을 전면 부정하는 거짓으로 자신의 삶을 소비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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