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7월 5일 일요일

진짜 진짜 마음챙김과 진짜 진짜 위빠사나 - 아직도 남아있는 지독한 사이비 사기꾼들로부터 벗어나기 -




링크 :) 진짜 마음챙김과 진짜 위빠사나 - 멍청이들과 사기꾼들에게 속지 않는 법-
이라는 마음챙김 관련 글을 쓴지 벌써 어언 1년이 지났다. 시간이야 항상 빨리지나가고, 앞으로도 빠르게 지나가겠지만, 어째서인지 유독 이 글을 쓴 시점부터 오늘 까지의 1년이 가장 빨리 지난것처럼 느껴진다.

 그 지난 시간동안 정말 많은 분들이 이 글을 읽었고, 도움을 받으신 분도 상당히 있다고 하니, 괜시리 뿌듯하고 좋은 기분이 들기도한다. 위에 글은 마음챙김에 관한 정보가 한국의 인터넷상에선 한심할정도로 비루했기에 직접 그 정보의 항아릿속을 채우고자 쓴 글이며, 스스로의 생각을 정리할 요량도 목적으로 하여 쓰인 글이다.

 사실상, 초심자도 아닌 입문자 주제에 쓴 글이였던지라(그런데 인터넷에선 이 입문자 보다 못한 사이비가 절대 다수로 판을 친다),어설픈 점도 많고, 미숙함이 묻어나는 글이지만, 이 글이 쓰여진 의도 -올바른 명상의 정도를 소개하는 것-에는 그래도 나름 충실했다고 부끄럽지만 자평은 해본다.

그리고 이왕 이렇게 시동을 걸어, 달렸으면 이 글에 탄 승객들을 다음 정류장 까지는 확실히데려다 줘야하지 않을까 싶은 희한한 책임감에 마저 글을 이어 써보려 한다.
-코로나 때문에 가뜩이나 새로운 스트레스도 업데이트 되지 않았나? - 
그래서 최대한 힘 닿는 데까지 승객들을 다음 정류장까지 데려다 주고, 스스로 시작한 일에 마침표 정도는 찍어 보겠다. 








***** 간단한 QnA 


Q.마음챙김은 무엇인가요?
A.마음챙김이란 서양의 학자와 의사가, 스리랑카-미얀마-태국등의 상좌부불교(즉, 초기불교)의 정통 수행방법인(부처님께서 이 명상을 통해 해탈을 얻으셨다는 '호흡명상-일명 아나빠나 사띠', 즉 위빠사나)위빠사나를 서양인 입맛에 맞게 재정립하여 우울증이나 불안 혹은 신체적 고통등에 문제를 앓고 있는 환자들에게 사용하고 보급하여 효과가 있음이 -그것도 대단히!- 과학적으로 입증되어, 진지한 치료의 목적으로써, 현재 미국의 인지치료에서 각광 받으며 쓰이는 명상법입니다.
(그렇지만, 조현병이나 조울증 같은 위험한 정신병에는 왠만하면 마음챙김을 하지 마십시오. 문제가 더 커질 확률이 농후합니다. -아니 확실히 문제가 커집니다.- 마음챙김은 만병통치약은 당연 아니고, 정신치료의 대용품이 절대 아닙니다. 정신적 문제에 대한 마음챙김은 실제 검증받은 정신과의사나 최소한 박사학위 이상에 제대로 교육받은 전문가의 주도하에 이루어지는 실질적인 인지행동치료법입니다. 정신병에 대한 마음챙김, 명상은 자기 임의로 하는 그런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스스로 정신병을 치료하려는 요량으로 해서는 절대로 안된다는 것입니다. #안찾아보니 모르는 겁니다. 위빠사나를 치료도구로 사용하는 정신과의사분들도 한국에 많습니다!! 그들에게 자문을 구하고 상담을 받아보십시오.) 


Q.그럼 서양의 마음챙김과 위빠사나에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A.서양의 마음챙김은 기본적으로 종교적인 색체를 쫙 뺐습니다. 특히 업과 윤회, 팔정도와 삼학이나 5계 혹은 8계, 12연기나 사성제와 같은 종교적 이념은 가르치지 않습니다. 오로지 위빠사나를 통해 육체적으로 빠르게 얻을 수 있는 실용적인 이익의 부분에만 초점을 둔 게 바로 오늘날에 마음챙김 입니다. 위빠사나는 애초부터 단지 스트레스를 덜 받고, 좀 더 성공하고, 똑똑해지기 위해 하는 명상법이 아닙니다. 위빠사나는 사실 '윤회를 끊기 위한' 명상법, 즉 '해탈'을 목적으로 한 명상법이지, 현대의 마음챙김 처럼 30분 운동하기 수준에 생활의 질을 좀 향상하기 위한 트렌디한 요가 같은게 아닙니다. 고로, 이제 좀 감이 잡히시겠지만 마음챙김과 위빠사나는 지향하는 바가 전혀 다릅니다. 마음챙김이 단지 지금보다 좀 더 나은 마음상태가 되는 것을 위한 그 정도 수준에 것을 요구하고 노력한다면, 위빠사나는 그런 차원을 아득히 넘어서는 목표를 위한 수행방법 입니다. 이렇듯 마음챙김과 위빠사나 사이에는 정말 큰 간격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위빠사나를 종교적인 것만으로 치부하여, 종교적 명상법 이라는 이유 때문에 꺼려한다든가 거부하려 하시면 안됩니다. 솔직히 말해 진짜 불교(즉, 초기불교)는 애당초 신을 믿지 않고, 자기 자신을 의지처로 삼아 수행하여 스스로 깨닫는 실증적 방법론이기 때문에, 기독교인이 이 명상법을 하든, 이슬람교도가 이 명상법을 하든 애초부터 상관 없습니다. 다만, 위빠사나를 자신이 믿는 신과 연결시켜 이해하려는 시도는 본인의 삶에, 또 사실로써도 오류기에 잘못이 됩니다. 애당초 마음챙김 자체가 이런 종교적 문제 때문에, 불교적 교리를 싹 걷어내고, 그 명상법만 보급된 것입니다. 그러니 정 종교적인 갈등이 일어 갈팡질팡 하신다면, 마음챙김만 하시면 되고, 서양인들 처럼 윤회에 대한 부담을 지우시면 됩니다)


Q.그럼 마음챙김과 위빠사나는 얼마나 다른건가요?
A.솔직히 말씀드리면, 위빠사나가 진짜 랍스터라면 마음챙김은 가공식품으로 만들어진 랍스타 맛살 정도라 생각합니다. 어차피 랍스타 맛만 내서 당장에 혹은 현실적인 이익만을 내면 되기에 굳이 손질도 버거운 진짜 랍스타로 맛을 내진 않겠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마음챙김은 그냥 위빠사나 맛이 나는 가공식품으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맛은 비슷하지만, 본질의 클라쓰는 넘사벽으로 다릅니다.(진짜 랍스터와 랍스터맛 가공식품의 차이보다 더 큰 차이로써) 그런데 위빠사나 처럼 진짜 '윤회'를 끊기 위한 출가 수도승들에 진중하고 경건한 수행이 오늘과 내일을 이리치이고 저리치이며 간신히 살아가는 현대 사회인들에게는 오히려 맞지 않을 수 있겠죠? 진지하게 '해탈'을 목적으로 하지 않으신다면(농담이나, 과장이 아닙니다) -진짜 랍스터로 손질하고 요리해서 그걸 아침으로 먹고 출근하려 하지 않으신다면- 간단하지만 맛은 똑같이 날 수 있는 마음챙김으로 대응 하시는 게 옳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서양인들이 마음챙김으로 재가공해 만든거지만요-


Q.그럼 마음챙김으로 수행을 하면 되나요? 왠지 위빠사나보다 못한것 같은데? 
A.아닙니다. 전부 자기 생각하기 나름입니다. 정신병을 치료할 목적으로 제 멋대로 하는 게 아니시라면, 단지 심신의 안정을 위해서 하는 명상수준에 것이라면, 마음챙김으로 충분합니다. 오히려 위빠사나를 제대로된 수행처 -최소한 존경받는 스님 내지는 검증받은 명상 전문가- 에서 진중하게 수행하지 않으시면 안하니만도 못한 잘못된 결과를 얻기가 쉽습니다.
여러분이 어떤 운동을 배우신다면, 또는 인생을 건 수능 공부를 해야하는 수험생이라면, 그 운동을 알려주는 강사의 이력이나, 수능 강사의 경력과 스펙을 꼼꼼히 따져볼것입니다. 이 강사분의 경력이 어떤지 진짜 제대로 배운 분인지 등을 말입니다. 위빠사나도 이와 마찬가지 입니다. 오히려 골프나 수능강사 보다 더 경력과 실력을 따져봐야하는게 위빠사나 혹은 마음챙김 강사 입니다. 잘못된 싸이비 골프 강사나, 수능 학원 강사에게 잘못 걸리면 그 만큼에 피해를 입듯이, 잘못된 싸이비 영성술사, 마음챙김 강사에게 걸리면 물리적인 손해는 물론이고 마음까지 상당히 피폐해질 수 있습니다.(마음 상태가 크게 손상되어 회복이 안될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간곡하게 말씀 드립니다. 제발 싸이비들에게 혹해서 돈과 마음을 사기당하지 마십시오. 그냥 간단한 호흡 명상만 제대로 해도 -이 정도는 충분히 혼자서 할 수 있습니다. (단! 정신병이 있으신 분들은 치료 목적으로는 절대로 혼자 마음대로 하지마세요)- 여러분은 제대로 위빠사나든 마음챙김이든 명상이든 한 것이고, 할 수 있습니다.


Q.그럼 그 마음챙김은 어떻게 하나요?








***** 마음챙김을 하는 방법


 마음챙김을 이해하기 쉽고 더욱 용이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현대인류의 총아인, 과학의 언어로써 설명해보도록 하겠다.(여기서부터는 뜬금없이 반말체;)
현대 뇌과학과 신경과학에서 실험을 통해 증명된 사실(주류로써 이제 인정되는 사실)은

"우리가 자아, 에고라고 생각하는 것, 즉 나! 라고 하는 것은 없다는 것이다. "

에릭 켄들이란 위대한 노벨상 수상자는 자신의 저서 '기억을 찾아서' 에서 이렇게 단언한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말은 틀렸다고, 우리의 이 존재감, 에고감, 나라는 환상은 그저 뇌의 특정 부분의 작용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고, 이는 실제로도 사실로써 증명이 되었다.

누군가는 아직도 아리스토텔레스의 심신이원론(영혼과 육체는 분리되어있는데, 영혼이 육체보다 더 고차원 적이고 가치있다라는 고대의 사상)을 신봉해서, 기독교적인 사고방식으로써 -그는 기독교를 혐오한다고 주장하겠지만- 영혼은 있고! 내가 있고! 그것도 아주 제대로 있다고 주장할것이다! 그리고 유물론자들을 욕하며(진화론과 빅뱅이론을 거짓이라 욕하듯이), 내가 있다는 느낌! 그리고 내가 없다고하면 소멸될 것같은 이 극렬한 두려움의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며, 다시 심신이원론의 어두운 그림자 속으로 빠져들어가 그것만으로 만족해 하겠지만. 진실은 심신이원론이란 거짓이며, 나라는 자아감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진화적 과정에서 생존성을 높이기 위해 생성된 뇌의 전략일 뿐이다.

'나'라는 건 없다.
당신이 이를 받아들이든 못받아들이든 이것은 과학적으로 증명이 다 끝난 일이고,
만유 인력의 법칙이나 엔트로피의 법칙 만큼 분명한 사실이다.

그럼 무엇이 이 나를 존재하게 만드는가?
누가 밥을 먹고, 양치를 하고, 의지를 내고, 선택을 하고, 행동을 하는가? 내가 없다면 내가 나쁜 짓을 해도 내 잘못이 아니지 않는가?
그렇지 않다.

먼저, 당신의 행동은 그 행동을 하기전 뇌에서 이미 결정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실험을 통해 이또한 증명이 끝난 과학적 사실이다.) 그리고, 그 의지라는 것 또한 이미 결정된 결과이지 당신이 직접 선택해서 한것이 아니라는 사실 또한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지만, 우리의 진화는 그러한 '무의식적 과정'들을 '인지'하고어떤 사유와 의지와 의도와 행동이 결정되었는지를 '알아차려서 확인하고, 재선택'할 수 있는 기능을 발달시켰다. 왜냐하면, 아무리 뇌가 행위와 의지를 미리 결정해서 그대로 움직이게 한다지만, 뇌 또한 완전하지 않다. 만약 뇌가 잘못된 전략을 세웠다면? 우리는 그것을 바로잡아야 한다. 그래야 생존성을 보장 받을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우리의 행동에 대해 책임이 있다 - 얼마든지 스스로 알아차려 조정할 수 있으니까. ;즉, 자유의지에 재정의가 필요할 뿐이지, '나'가 없으므로 법적으로 처벌을 안받아도 된다. 라는건 용납될 수 없다.; 그런데 문제는 알아차려 인식하는 과정이 드물다는 것이다.>


 바로 여기 이부분 부터가 중요하다. 


뇌가, 모든 결정을 미리 해놨지만. 우리는 그 결정을 알아차려서 스스로 수정하거나 조정할 수 있다. 이 특정한 인식 부분이 우리에게 부여된 기능이고 - 이또한 뇌의 부위일 뿐이므로 엄밀히 따지면(관습에 따른) 내가 아니다. 손가락이 나인가? 발가락이 나라 할 수 있나? 이 인식 부분을 나라고 착각하는 것도 오만한 어리석음이다. 그렇지만 분명한 건 뇌에서 결정한 일들을 인식하고 의지내어 재선택할 수 있는 기능을 갖춘 뇌의 부위라는 것이다.- 이 기능이 바로 "마음챙김"을 할 수 있게 해주는 부분. 즉, "알아차림"할 수 있게 해주는, 빅터 프랭클이란 로고스 테라피에 창시자가 말한 바로 그 "틈!" "존재의 틈새다!"








어떤 꿈을 기억할 수 있는가?
생생했던 그 꿈은, 꿈을 꾸면서도 그것을 꿈인지도 모른 채, 꿈속에 사건과 이야기와 꿈속 사람들에게 이리저리 휘둘리면서 -그걸 진짜 현실이라 착각한 채- 온갖 감정을 쥐어짜이며 농락당하다 꿈에서 깬다. 그리고 당신은 꿈에서 깼을 때야 그것이 꿈이였다는 사실을 알고 안도한다. 그리고 꿈이란 우리의 현실을 모방하기에 -어떤 심리적 통합을 위해- 
꿈을 꾸면서도 꿈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그 모습이 바로 우리네 현실 모습과 같을 수밖에 없다. 우리는 꿈을 꿀때처럼, 현실을 꾸면서도 그게 현실인지 모른다.
그건 꿈속에서 정해놓은 시나리오대로 끌려가며 능욕당하는 사람 처럼,
그와 같이 현실에서도 -참고로 꿈에서 작용하는 뇌부위와 현실에서 작용하는 뇌부위가
얄궂게도 같다. 꿈에서나 현실에서나 당신은 뇌의 노예고, 꼭두각시이며, 이미 짜여진 각본의 배우와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선지자들이 이 세상은 연극과 같다고 한 것이다.- 
당신은 시나리오대로 끌려가며 살아가는 것이다.


 * 누군가는 여기까지 오면 '나'라는 게 없다는 생각에 대한 두려움과 허무감으로써 허무주의나 공허감에 빠질 수있다. 그런데 착각해선 안된다. '나' 라는 자아감이 없다는 것이지, 여러분의 이름, 존재, 그 자체가 없다는 게 아니다. 여러분은 분명 실존한다.
 단지 우리 몸에서 각자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수십조개의 세포들이 '생존'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서로 협력하고 같이 한데 뭉친 총체적인 활동으로서의 '나'가 있음으로 이해가 바뀌는 것 밖에는 없다!! 즉, 당신은 이 수십조개의 생명에 대한 총체적인 지휘자 - 맡은 바 부여받은 임무: 알아차려 인식하고 선택하는게, 심장에게 심장의 임무가 부여되듯 당신에게 부여된 임무이다- 책임이 있으므로, 더 나은 선택과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확실히 생존을 위해 이런 총합적인 사령관(전전두엽, 자아감)을 만들어 놓은건 진화적으로 영리한 전략이다. 그럼 이 영리한 전략에 따라 계속 에고감을 키우면서 살면 되지 않을까? 아니다. 괜히 진화에서 마음챙김을 할 수 있도록 만든게 아니다. 사실 마음챙김도 명상도 알아차림도 마찬가지로 진화적 산물이고, 뇌의 영리한 또 다른 전략이고 더 상위에 있는 전략이다. 당신은 이제 이게 무슨 말인지 얼추 이해했을 것이다.  -

한번 합리적인 생각을 해보자. 여러분이 눈이 가려진 채 뇌에게 이쪽 저쪽으로 질질 끌려다니면서 뇌가 만들어낸 자아감에 빠져 그냥 좀비처럼 살아가면서 '이게 나야! 이게 바로 나의 에고야! ' 하면서 만족하며 사는 지금 현실의 모습과, 그 장님 상태에서 벗어나 뇌가 나를 어느쪽으로 이끄는지를 정확히 보면서, 뇌의 조종을 거부한 채, 자신이 주체적으로 선택하여 살아가는 삶. 이 둘중에 무엇이 더 가치 있다 생각하는가? 당연히 후자일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선 마음챙김을 해야 하는 것이고, 일단 '나'라는 게 없다는 뇌과학의 상식을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도대체 뭔 수로 뇌의 연극에서 벗어날 수 있겠는가? 


자! 바로 여기에서 마음챙김의 기능 -진화적 의도대로-이 발휘되어야 하는 부분인 거다! 


우리가 무엇을 하는지를 알아차리고(뇌가 어떻게 우리를 노예화 하여 멋대로 조종하는지를 알아차리고), 그게 정확히 무엇인지를 알아차리며, 꿈 속에서 꿈이라는 사실을 알면, 더이상 꿈에 휘둘리지 않듯이, 현실도 현실이란 사실을 깨닫고 현실에(정확히는 뇌에) 더 이상 휘둘리지 않는 것이다. 노예가 해방되듯 스스로를 해방시키는 것이다.
(이것은 영적으로 뿐만이 아니라, 사회적, 육체적, 물리적, 심지어 금전적으로도, 아니 인생 전체에서 엄청난 이익이 될 수밖에 없다. 당연하지 않나?)


- 고로 이걸 당신이 이해했다면 그 두루뭉실하고 난해한 개념인 메타인지에 대해 이해한 것이다. 이게 바로 메타인지라고 하는 것이고, 메타인지를 잘하는 사람이 더욱 성공적인 삶을 산다는 것은 익히 잘알려진 사실이다. - 


 화가 나면 우리는 정신도 못차린 채 화에 끌려 분통을 터트리고, 자신의 마음을 죽이고 그 안에서 헤엄치며 허우적 된다. 그때! 내가 화가 났음을 알아차리고, 그 화에서 빠져나와 그 화라는 것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면?(즉, 뇌의 결정된 작용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우리는 더 이상 그 화에 휘둘리지 않고, 그 화를 적절히 조절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그리고 그 화가 '나'가 아니라, 단지 그 화를 일으키고 활성 중인 어떤 뇌부위에 전기적 신호반응일 뿐이라는 걸 분명히 알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화'가 '나'라는 착각을 잃어버림으로써 우리가 얻는 것은 무엇인가?
'화'가 처음에는 나 였다가 유체이탈 하듯 빠져나가 바로 앞에 객관적 개체로서 놓고,
이를 봄으로써 우리가 얻는 것은 무엇인가?


 바로 노예 상태에서의 해방이고, 자유와 행복을 위한 한걸음을 내딛으며,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스트레스를 현저하게 줄여 참되고 이익되는 삶을 사는 것. 이것이 우리가 얻는 것이다.당신은 조금 짜증이 났을지도 모른다. 마음챙김 방법을 알려준다면서 왜 이런 학술적이고 이해하기 힘든 내용들만 줄줄 풀어놔서 스크롤을 계속 내리게 만드는가 하고 말이다.

어서 빨리 간단히 -요가 동작을 배우듯이- 마음챙김을 익혀, 그냥 돈 버는데에, 스트레스 해소하는데에 쓰고 싶을 뿐이다. 그렇지 않나? 아니 그렇지않다. 그래서는 안된다. 이런 분명한 개념 설명과 이해 없이 무작정 마음챙김 명상법이니 뭐니 하고 들이밀어대니 그것은 싸이비 마음챙김이 되는 것이고, 그래서 문제가 되는 것이다. 교통법규도 하나 모르면서 도대체 무슨 운전을 하겠는가? 정말 그런 상태로 운전하다간 모두에게 엄청난 피해를 입힐 수 있는 아주 위험한 일이 될 것이다.

 내가 말하는건 최소한의 교통법규, 우리가 서로 피해 입지 않기 위해 알아야할 기본적인 개념 설명인 것이다. 당신이 어쨌든 불교적 명상법에 발을 얹은 이상, 당신은 이를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해하고 수용하고 나서 마음챙김을 시작해야 한다. 
- 명상을 떠나 이러한 과학적 지식의 습득은 당신 삶과 성장에 크나큰 도움이 될것이다. -






Q. 아잇!! 그래서 마음챙김 어떻게 하냐고!!! 뭘 해야 싸이비 마음챙김이 아닌건데?
A. 조금만 아주 조금만 더 이해해야할 게 있다. (물론 좀 길수도 있다.)

먼저, 애써서 하면 안된다. 어떤 강박에 빠져 완벽하게 하려거나, 제대로 하려고자,
당신이 언제나 그렇듯 악을 쓰면서 하려고 하면 안된다. 이건 정말 멍청한 짓중에서
가장 멍청한 짓이다. 심지어 마음을 편하게 먹으라고 말하면, 그 마음을 편하게 먹기 위해
애를 쓰고 노력하는 사람이 절대 다수다. 고요해지라고 했더니 고요해지려고 애를쓰고,
초연한 마음을 가지라니 초연한 마음을 가지려 애를 쓰고, 차분한 마음을 가지라고 했더니 차분한 마음을 가지려 애를 쓴다. 세상에 이런 바보같은 짓이 또 있을까!

그러니 당신은 마음챙김을 할 수 없는 것이다.
아니 그 어떤 고요 한자락도 경험할 수 없는 것이다. 선문답식에 두루뭉술한 추상적이고 형이상학적인 말은 하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할 걸 말해주겠다.

마음은(그러니까 뇌는) 한번에 한가지씩에만 신경과 주의와 집중을 할 수 있다.
그러니까 당신이 고요해지기 위해, 마음챙김을 하기 위해 애를 쓰는 그 괴로움에 마음과 뇌는 집중되고, 주의를 기울이고 신경쓰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전편을 읽은 사람은 알겠지만, 볼수록 커지는게 뇌의 특성이다) 그리고 그 괴로움은 더욱 증폭될 것이다.

 간단한 예로써, 자려고 침대에 누웠는데 잠이 안올때를 생각해보라. 당신은 잠을 자기 위해 애를 쓰면 쓸수록 더욱 잠을 잘 수 없다. 잠을 자지 못하자 생기는 분노와 불안 스트레스는 신경쓸수록 더욱 커진다. "애를 쓸수록 더욱 안된다" 이건 인간 삶의 법칙이다. 마음챙김을 하란다. 마음챙김을 하려고 애쓸수록 이런 자연법칙에 의해 당연히 더욱 안된다. 괴로움이 불면증처럼 커진다. 그 괴로움을 다시 억압하고 외면할 수록(당신은 그것에 지금 집중하고 있다) 다시 더욱 커진다. 악순환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간단하다. 우리가 한곳에 하나만을 인식할 수 있다면, 그런 괴로움에서 고갤 돌려 호흡으로 돌아가 집중하는 것이다. 이제 조금 감이 잡히는가? 이게 옳은 마음챙김이다. 그리고 마음의 특성상 당신이 호흡에 집중하면, 당연히 그만큼 괴로움에는 주의를 기울일 수 없다.
(케이크와 만두를 동시에 먹을 순 없으니까. 뇌는 한가지에만 주의를 기울일 수 있다.)
그러면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것은 사그라들기때문에 (주의를 기울이면 커지듯이 주의를 거두면 그 대상은 조그라든다.) 당신의 괴로움과 불면증, 불안 고통은 나도 모르게 없어진다. 바로 이거다!
- 즉 이 애씀 또한 그 애씀을 '인식하고 거기에 집중, 주의'하기에 이 애씀이 자각되는 것이다. 이 애씀에서 시선을 돌려 그냥 호흡에만 주의 집중하면, 신기하게도 이 애씀 또한 어느새 의식 저 멀리 뒤편으로 자동적으로 사라져 버리고, 자신도 모르게 호흡에만 집중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것이다. 이게 마음챙김이다. 멍청하게 붙잡고 놓아주질 못하고 끝까지 잡고 지켜보는게 아니다.그런데 싸이비 마음챙김 강사들은 손에 압정을 쥐고 꾹 손으로 쥐면서 그 고통을 지켜보라는 식으로 가르친단다. 그딴게 마음챙김 이란다! 정말 제정신이 아니다! 마음챙김은 쥐고 붙들어 보는게 아니라, 알아차리면 놓아버리고 호흡으로 다시 돌아오는 것이다.

우리는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을 때에, 다른 무엇을 더 잘 알아차린다. 우리가 처음에 호흡의 들숨과 날숨에 주의를 기울이면 신기하게도 호흡에 특성이 알아차려 진다. 예전에는 호흡에 대해 생각해본적도 없었다! 그런데 호흡에 마음을 두니, 긴 호흡도 있고, 짧은 호흡도 있고, 거친 호흡도 있고, 부드러운 호흡도 있고, 가볍거나 무거운 호흡도 있고 호흡이 모두 천차만별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게 된다."

그러다가 다른 잡념에 빠져 마음이 방황한다. 괜찮다. 호흡명상-진짜 명상-은 "알아차림"을 위해 하는 거다. 그 잡념에 빠졌다는 사실을 "알아차림!" 하는 것 자체가 명상이고, 사실 이게 진짜 명상의 순기능이고, 이런 상태는 절망할게 아니라 오히려 잘하고 있다고 스스로를 독려 해야 한다. -공수레 공수거 식으로 좋게 말하는 게 아니라, 진짜 이게 수행의 핵심이 맞다. 이걸 위해 명상 하는거다. - 그럼 그 잡념을 알아차렸다! 어쩌면 잡념에만 마음이 방황하는건 아닐지도 모른다. 분노일지도 모르고, 고통일지 모르고, 괴로움, 슬픔, 성욕, 우울등에 마음이 빠져있을지 모른다. 그래도 괜찮다. 스스로가 그 상태에 있음을 알아차린다.
(처음에 했던 개념설명을 다시 떠올려보자. 그건 당신이 아니다. 당신이 하는 것도 아니고, 그게 진짜 당신의 일부도 아니다. 그냥 뇌의 어느 부위 -편도체든 변연계든 대상회든-에서 작동한 것에 지나지 않고, 그렇게 작동하여 당신을 조종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음을 떠올려 보자. 그래서 그것이 나라고 착각하여 또 좀비화 되지 말고 알아차려 멀찍이 떨어져 보는 것이다.) 그리고 조금에 신경도 쓰지 않고, 그것이 그것이라 알아차리고 (분노, 우울, 욕정 등으로 이름을 붙여도 아주 좋다!) 알아차렸으면 미련은 훌훌 던져버리고 다시 호흡으로 돌아와 호흡을 본다. 호흡을 알아차린다.

-아마도 당신은 수만번 정도 호흡에서 다른 대상으로 왔다 갔다 할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게 마음챙김 명상이다. 좌절하거나 절망하지마라. 꾸준~하게 호흡에만 집중을 유지하는 것 뿐만 아니라, 이 또한 그에 못지 않게 훌륭한 -어쩌면 더 이치에 맞는 - 명상법이다. 왜냐하면 당신은 "알아차림"을 주 목적으로 하고 있는 것이지 "집중 명상"을 하고 있는게 아니기 때문이다. 잡념과 여러 생각들은 알아차림의 "재료"가 되기에, 이런 잡념이 없으면 "알아차릴 것도 없는 것이 되버리기에, 알아차림 명상이 아닌것이다" 이제 이해가 되는가? 괜히 당신의 마음 편해지라고 좋은 소리를 해주는게 아니다 마음챙김은 당신 마음에서 일어나는(뇌에서 임의로 결정해 멋대로 조종하는) 상태를 알아차리고(잡념이든 감정적 분출이든) 호흡으로 돌아가 호흡에 집중해 호흡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결국 호흡도 알아차림의 기본적 재료로써 쓰는 것이다. 이제 머리가 번쩍 뜨이지 않는가?) 그러니까 호흡이든, 잡념이든, 무엇이든 당신은 그것을 하고 있다고 알아차려 그것을 분명히 알면 되는 것이다!!!!- 

이제 어떻게 마음챙김을 하는지 당신은 대략적인 윤곽이 잡혔을 테니, 하나의 과정을 단계별로 상세하게 설명함으로써 이제 완전히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






가부좌를 하고 자리에 앉는다. 
(의자에 앉든, 일상생활에서 잠깐 하든 상관 없다. 서서하든 걸으면서 하든, 밥먹으면서 하든, 정말로! 볼 일을 보면서 하든 상관없다. 그래도 일단 기본적 설명을 위해 명상의 기본 자세를 필두로 시작해보겠다.)

호흡에 마음을 둔다.
(초점을 코 끝에 두건, 배의 일어남과 꺼짐에 두건, 인중에 두건 그런건 상관없다. 그러니 그런거에 너무 연연하지 말자. 우리의 집중 대상은 '호흡 경험'이지, 코 끝 경험, 배에 움직임 경험이 아니다. 호흡의 일어남과 꺼짐만 알아차리면 되니, 자기 기호에 맞게 초점을 어디에 두든 편한대로 하면 된다. ~누구는 초점을 코 끝에 두라하고 콧구멍에 두라하고 배에 두라하고 다~ 쓸모없고 필요없는 소리다. 자기한테 편하고 가장 맞는대로 하는 게 정답이다.)

호흡을 알아차린다.
(근데 왜 항상 호흡을 기본 베이스로 할까? 호흡은 항상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즉 휴대성과 편리성이 있으니까! 그래서 꼭 호흡을 베이스로 안해도 된다. 걸을 때 발끝에, 아니면 들리는 소리에, 만져지는 감촉에, 어디든 알아차림 할 수 있는 대상을 기본 베이스로 삼아도 된다. 그런데 호흡이 가장 보편적이고 편리하고, 인지하기 좋으므로 호흡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무조건 꼭 호흡으로 해야만 하는게 아니다. 일상에서 마음챙김을 하기 위해서 지금 하고 있는 움직임에 아니면 보이고 들리고 맛보여지는 것에 마음챙김 해도 되는것이다. -)

호흡의 변화나 움직임 형태 등을 너무 애쓰지 말고 그냥 자연스럽게 알아차려 본다.
(호흡이라는 게 집중해서 보면 또 신기하다. 긴 호흡이 있는가 하면 짧은 호흡도 있고, 부드러운 호흡이 있으면 거친 호흡도 있고, 모든 호흡(들숨과 날숨)이 다 똑같지 않고 각양각색이다. 이러한 신비로운 변화와 차이를 알아차려본다.)

잡념이 떠올라 마음이 호흡에서 벗어났다는걸 알아차린다. 
(이는 절망스러운 일이 아니라 우리가 고대하고 기대했던! 잡념에 대해 알아차림할 순간이고! 뇌에서 해방될 능력(뇌의 근육, 메타인지)을 키우는 기회가 될것이다! 잡념이 일어났음을 알아차리면 그것이 잡념이라는 것을 알고 -잡념이라 이름붙여도 아주 좋다- 곧바로 호흡으로 돌아와 호흡을 다시 알아차린다.)

그런데 이번에는 뭔가 다르다 너무 고통스럽다! 그 고통스러운 후회와 번민, 고민이 떠올라서 마음이 태풍을 만난 듯이 어지롭고 진정되지 않는다!!!
(괜찮다. 이는 더욱 강력한 알아차림의 주재료가 될 것이다. 이를 여전히 알아차린다. 노인이 돋보기까지 껴가며 자세히 보려고 보면 안된다. 이런건 자세히 관찰하여 볼수록 - 볼수록 커진다! - 악화만 될 뿐이다. 이것이 무엇이라고 알아차린다(그래, 고통이라고 이름붙여보자.) 고통.. 고통.. 후회.. 번민.. 알아차려 이름 붙였으면 다시 호흡으로 돌아와 호흡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얼마 후 당신은 대단한 경험을 할 것이다. 그렇게 강력한 마음의 혼란이 지금은 도대체 어디로 간거지? 하고 의아해 하거나 아예 생각조차 안나게 될 것이다. 그저 지금 알아차리는 건 아까번 들숨보다 좀 더 가벼운 지금의 들숨이다. 드디어 태어나서 난생 처음으로 뇌의 조종과 연극에서 당신은 그것이 연극과 조종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당신의 의지로써 뇌에게 놀아나기를 거부한 것이다.)

당신은 10분, 15분, 20분, 25분, 30분, 아니 단 1분이라도 이런 명상을 다 마치고 눈을 뜬다.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 버스에서, 지하철에서, 일을 하다가, 쉬는 시간에, 일상 생활중에 고통과 분노, 불쾌한 감정에서, 통증에 대해서. 어떤 상황에서건 필요에따라 이러한 마음챙김을 해본다. 간략하게 해도 좋다. 불완전해도 좋고, 명상이 만족스럽지 않아도 좋다.

왜냐하면 당신이 이 명상을 하는 이유는 "당신의 뇌가 결정한 대로의 연극"이라는 걸 "알아차려" 그것과 "동일시" 하지 않고, 이런 좀비화에서 빠져나와, 호흡이나 들리는 소리 등에 주의를 돌려 그 호흡과 소리를 알아차림으로 인식을 대체하므로써 정신적, 육체적 고통에서 벗어나고 메타인지를 키워 더이상 익숙한 고통을 다시는 받지 않을 예방법을 스스로에게 가르쳐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명상을 꾸준히 계속하다보면 이런 소기의 목적을 아득히 뛰어넘어, 더욱 강력한 인내력과 의지력을 얻고, 똑똑함과 영리함, 자기절제와 명확한 분석력과 판단력과 같은 지적능력 또한 얻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이것들은 부차적인 소득일 뿐이다.

뇌는 가소성이 대단히 큰 물질이기 때문에, 
당신은 이 명상을 꾸준히 하면 실제로 뇌가 변한다.
(PET이나 SPECT, fMRI로 뇌를 촬영해서 보면 실제로 진짜로 변해 있다!)

당신이 지금껏 당신을 괴롭혔던 정신적 문제에 앞으로는 괴롭힘을 받지 않는 뇌로 뇌가
실제로 변하고, 당신의 메타인지를 담당하는 회백질이 실제로 증가해 두꺼워져서 진짜로
전보다 똑똑하고 객관적인 사람이 되고, 여러 마음을 상하게 하는 어려움과 괴로움에 직면해도 이를 이겨나갈 인내력과 의지력이 실제로 존재하게 해주는 뇌부위의 활성화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렇게 철저한 실증, 과학적 사고관을 철저히 갖춘 서양에 의사들이, 박사들이, 과학자들이 이 마음챙김 방법을 실제 치료방법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그냥 불교라는 동양의 문화가 좋아서 환자들에게 이 방법을 쓰는게 아니다.
여기에는 대단히 중요한 시사성이 있다.
왜냐하면 이 방법을 통하면 과학적으로 당신은 당신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과학자들이 인정해주고 있다는 이 사실 때문이다.






언어와 블로그의 한계상, 아직 해야할 말, 필요한 말이 더 있음에도 (사실 끝도 없는 배움의 연속이기에 끝도 없이 설명할 수 있지만) 할 수 없는 점 양해를 바라고,

이제 마지막으로 1여년 동안 받아온 질문들을 간략하게 짚고 넘어가는 것으로 길다면 꽤 긴 이 글도 마쳐보려 한다.


< 초월명상등의 다른 명상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전혀 안좋게 생각합니다. 돈을 주면 고유의 만트라니 뭐니를 주면서 그걸 염~ 하면서 명상하라 하죠? 그 만트라 없이 개 이름이나 아이돌 이름으로 염해도 효과는 같습니다.
돈 주고 배우는 명상은 저는 정말 극혐 합니다.
명상은 돈 거래를 통해 사고 파는 매매 대상이 아닙니다.

또, 확실히 해두어야 할게, 초월명상등의 힌두교식 명상은 위빠사나 명상과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정말 단 1도 연관성이 없습니다. 서양에서 하는 마음챙김은 힌두교 명상과 완벽하게 다른 초기불교의 명상법인 위빠사나와 연관된 것입니다. 그러니 힌두교 명상이나 한국 불교의 간화선 등의 명상과 마음챙김은 완벽히 다릅니다. 이 부분을 분명히 하셔야 합니다.


<머리로는 알겠는데, '내'가 없다는 생각은 여전히 불쾌하고 기분이 안좋아요. 어떻하죠?>
기분이 안좋고 받아들이기 힘드시면 안받아들이셔도 됩니다. 명상하시는 분들은 꼭 완벽주의자 같아서, 마음을 놓는 명상을 해도 제대로 놓으려고 분주해 하십니다. 아닙니다. 마음이 불편하고 괴로우면 그렇게 하지 마세요. 왜 꼭 항상 남에 말을 따르고 의지하려 하십니까? 부처님께서도 자기 말이 받아들이기 힘들면 받아들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자기 자신에게의지하고, 자기 스스로 확립해야 합니다. 저는 그저 길을 안내했을 뿐입니다. 그 길을 걸을 것인지 말지는, 걸어도 어떻게 걸을 것인지는 모두 당신의 선택일 따름이고, 저는 당신이 옳은 선택을 할 수 있길 기도할 뿐입니다.


<혹시 채널링을 하시나요? UFO와 일루미나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답~답. 꼭 명상관련글에는 '신지학' 신봉자(라 쓰고 신지학 종교인이라 읽는)들이 가끔 찾아와 이런 류의 댓글을 꼭 남기십니다. 그러니 여기서 분명히 말합니다.
위빠사나와 마음챙김은 '대령'이니 '아트만'이니 '브라만'이니 채널링이고, 에테르니 프라하니 지구라는 학교에 배움을 위해 윤회를 했네 마네 하는 그런 사이비 종교들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고 연관성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런분들은 제발 정신과에 가서 진지한 상담을 받아보시길 강권 합니다. 비하가 아니라 이런 사유일반은 정말 위험한 정신상태로까지 발전할 수 있습니다.


< 이렇게 명상하는게 맞나요? >
제가 호흡명상, 마음챙김 명상법에 대해 상세히 이글에 써놨으니 몇 번이고 읽으시며,
참고하시면 됩니다.


< 그런데 다른 데선 이렇게 이렇게 하라는데요? 뭔가 좀 서로 달라서 헷갈리네; >
솔직히 말씀드려서 이 글에 쓴 호흡명상법은 전통적이고 스탠다드 입니다. 이 블로그에 가르침과 배치되는 마음챙김은 (사이비 까진 아니더라도) 분명 뭔가 잘못된 것입니다.
축구 하는 방법과 규칙이 어떻게 나라마다 지역마다 다를 수 있겠습니까? 옳은 명상방법은 절대로 서로 배치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쓴 명상법에 설명이 제가 발견한 것도 정립한것도 아니고, 저 또한 존경받는 대가의 말씀을 그대로 -물론 표현은 제 스타일로 해서- 알려드리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고로 여기서 제시하는 명상법이 옳습니다.
그렇기에 이 명상법과 개념들을 모든 명상의 판단 근거로 사용하셔도 됩니다.


 < 명상이나 불교 이해에 도움이 되는 책들이 있으면 소개 좀 해주세요 >
저는 개인적으로 아잔 브람의 책을 좋아합니다. 그가 쓴 모든 저서를 추천하는 데 특히
"아무것도 남기지 않기""놓아버리기" 두 권은 명상 수행자고 아니고를 떠나 인간으로써
꼭 읽어볼 충분한 가치가 있다 생각합니다. 세계적으로도 대단히 유명한 스님이라, 그가 쓴 책들은 웬만한 지역 도서관에는 모두 있고 현재도 서점에서 인기리에 판매중이기에 꼭 탐독해 보시길 강권합니다.

또 부처의 삶을 이해하고 싶다면, 틱닛한 스님이 쓴 "붓다처럼"도 꼭 읽어보세요. 소설형식인데 대단히 흥미롭고 재밌습니다. 입문용으로는 전현수 박사가 쓰신 불교관련 서적들이 좋습니다. 최근에 읽은 "해커 붓다" 라는 책도 상당히 흥미롭고 좋았습니다.

 저는 존 카밧진이나, 골드스타인, 샤론 등 서양의 마음챙김 선구자들에 책은 별로 선호하진 않습니다. 물론 당연히 다른 책들에 비하면야 훌륭하지만, 그렇게 큰 울림은 잘 못받았습니다. 더더욱이 무슨 무슨 마음챙김법! 하는 유행 쫒는 책들 또한 읽는 것 자체가 시간낭비라 생각합니다.

 제가 봤을 땐, 마하시 사야도, 파욱 사야도, 아잔 브람, 아잔 차, 고엔카 등의 검증 받은 실제 수행의 대가들이 쓴 책들이 확실히 더 좋았습니다. 물론, 마크 엡스타인의 "진료실에서 만난 붓다"와 같은 비 전통적인 불교 관련 책들도 가끔은 좋은 통찰을 주기도 합니다.

<크리슈나무니 우파니샤드니 하는 책들이나 신지학 관련 책들은 여기서 이야기하는 초기불교나 명상법과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참고로 한국,중국,일본 불교하고도 일절 관련이 없습니다. 기공이니 주역이니 하는 것들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한 글에 많은 걸 담아내려다 보니 상당히 긴 글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정말 선의의 마음으로 정성 껏 써보았으니
도움이 되신다 생각되면 주워가시면 되고, 마음에 들지 않으시면 그냥 가셔도 됩니다.
그렇지만 어찌되었건 이 글을 통해 더 이상 싸이비 마음챙김 강사에게 최소한 휘둘리며
금전적으로 육체적으로 영적으로 손해 보는 일은 없으시게 되실 겁니다.

위빠사나를 진중하게 배우고자 하신다면, 진짜 제대로 검증받은 위빠사나 명상 센터로 가서 수행하십시오. 정말 제대로 배우고 싶다면 미얀마고 태국이고 못가겠습니까?
국내에도 대단히 수승한 수행처가 많습니다. 그렇지만 검증은 본인 스스로 하셔야 합니다.
그것까지 대신 해드리긴 힘듭니다.

하여튼 이쯤에서 이제 글을 마치겠습니다.
당신의 삶에서 행복을 찾기를 희망합니다.



2020년 6월 1일 월요일

#영양제에 대하여 #여성형 탈모에 대하여





 #영양제는 의약품이 아닙니다. 말그대로 보충제이고, 보조제 입니다. 


 이게 뜻하는 바가 무엇이냐면 그렇기 때문에 의사나 약사들은 영양제에 대한 지식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약학이나 의학에서 의학과 의약이 아닌 영양제나 영양학을 공부하겠습니까? 가장 기초적인 단위에서의 학습은 이루어져도 심도 깊은 학습은 그들의 교육과정에 없습니다.

 고로, 의사도 약사도 영양학이나 영양제에 대해 잘 모릅니다. 그럼에도 왜 자꾸 의사나 약사에게 기대어 구태의연하게 영양제에 대한 강의를 들으려 유튜브를 배회하는지, 의아하지만 결국 의사와 약사라는 대단한 권위에의 기댄 연약한 심리적 행위임을 알기에 그러려니 하렵니다. 그럼에도 굳이 이 글을 쓰는 이유가 무엇이냐면

 자동차 정비에 대해 강의 하는 의사의 말을 듣고자하고, 요리에 대한 강의를 약사에게 듣고 싶으십니까? 영양학이나 영양제에 대해서도 이와 정말 완벽히 똑같은 바일 뿐인데, 그런데 어째서 영양제에 대해선 의학적 설명에 기대려 하는건지. 정말 이런 사실을 아셔도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하고자 하시냐는 진중한 물음을 하기 위해서 입니다.

 물론, 의학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영양제나 영양학에 대한 것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다시 한번 말하지만 문제는 의사나 약사도 영양학이나 영양제에 대해서 모른다구요. 안다는 사람들은 우리 처럼 따로 공부를 해서 영양제에 대한 지식을 학습한 후 자신의 전공과 섞어 하는 설명일 뿐 입니다. 그런데 영양제에 무슨 의학적 설명이 필요합니까?



 우리가 몸에서 필요로 하는 영양소가 결핍된 상태가 현대사회에선 드문데다, 이 사회에선 결핍으로 인한 질병이나 질환의 발생률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고, 고로 우리에게 결핍된 그 영양소를 영양제를 통해 채움으로써 질병이나 질환을 예방하고, 치료하고(사실 치료라기 보단 정상화에 가깝지만), 더욱 건강하게 사는데에 도움을 주는 게 보충제 입니다. 그래서 이건 의학도 아니고, 의약도 아닙니다. 말그대로 그냥 보충제라고요. 근데 이런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로다 같은 당연한 사실에 의학적 지식이 뭔 필요가 있겠습니까.

 영양제를 먹어봤자 아무런 도움도 받을 수 없다고 열렬히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하늘을 손바닥으로 가리려는 사람들 입니다.

영양소가 부족하면 우리 몸에 이상이 생깁니다. 그렇죠? 그리고 현대사회에서 아니 대한민국 지금 세상에서 누가 하루 영양소를 골고루 아주 충분하게 섭취하면서 생활하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매일 배달음식 시켜먹고, 편의점에서 대충 한끼 챙겨먹고, 라면이나 빵같은 인스턴트 식품으로 빠르게 대체하는게 이 바쁜 생활에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섭취의 전부 입니다. 심지어 그 바쁜 의사도, 약사도 다들 이렇게 식사하고 있잖습니까.

아프리카 기아들 뿐만 아니라, 선진국의 우리들도 그들과 마찬가지로 모두 영양소 부족에 시달리고 있잖습니까. 그리고 영양소 부족으로 인해 생기는 문제들이 대단히 많지 않습니까. 실제로 통계적 사실들이 이런 사실을 매년마다 보고서를 통해 우리에게 알려준다는 걸 굳이 또 상기하지 않아도 상식적으로도 고개를 끄덕일만한 당면한 사회문제 아닙니까.

그러니까
1. 우리 몸에서 영양소가 부족하면 몸에 이상이 생긴다.
2. 현대사회의 현대인들은 영양소가 부족하다.
3. 고로 현대사회와 현대인들은 영양소가 부족하여 몸에 이상이 생기거나 생겨있다.

라는 당연한 사실관계가 성립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냥 종합비타민 하나만 챙겨 먹어도, 이런 1,2,3의 문제들은 모두 해결되고, 영양소 부족으로 인해 생기는 건강상의 문제들은 모두 예방 및 정상화 가능하다는 겁니다. 이것만으로도 이미 영양제를 먹어야 하는 이유에 대한 충족인데 가타부타 여기에 무슨 덧붙일 말이 있겠습니까.

그러니 영양제를 먹어도 아무런 체감이 없다는 사람들은 그래서 감사하다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영양제를 먹은게 체감이 될 정도라면 당신의 몸은 아작이 나도 못해 가루가 된 상태이기 때문에 필수 영양소 섭취만으로도 몸이 좋아짐을 느끼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 최소한 그런 잘못된 상태가 아닌 사람이라면 당연히 영양제를 먹고 체감을 느끼지 않을 수 밖에 없고, 그렇기에 체감이 안나는 걸 오히려 다행으로 여겨야 합니다. 영양제 먹고 체감을 느낀다는 분들은 하루빨리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으세요.


 그런데 이런 매우 당연한 사실도 애써 부정하며 영양제는 안먹어도 충분하다는 분들이 그럼에도 꽤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영양학이나 영양제에 대해 잘모르기때문이고, 이런 깊숙한 사유까지는 해본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여성형 탈모에 대하여



 단언컨데, 여자는 탈모에 걸릴 수 없습니다. 부모님 두 분이 전부 대머리에다가 할아버지와 그의 아버지에 아버지에 조상 대대로 전부 대머리였다 해도 여자는 절대, 절대, 절대로 탈모에 걸릴 수 없습니다. 유전적으로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탈모의 요인은 테스토스테론이라는 남성 호르몬 때문이고, 탈모 유전이라는 것도 결국 이 테스토스테론의 문제가 부모로부터 선대로부터 대대로 내려와서 탈모 유전이라고 하는 겁니다. 그러니 여자들은 탈모 유전 따위니 어쩌고 알 필요 조차 없는 겁니다. (배우자를 선택할 때 빼곤요.)

여자는 남자가 아니니까요.

여자한테 테스토스테론이 분비가 안되는데, (약물을 맞지 않는 이상) 무슨 탈모 유전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여성은 남성호르몬이 분비가 안되는데 무슨 탈모 걱정을 할 수 있겠습니까. 만약 남성호르몬이 분비되는 여성이라면 그건 그것 자체로 육체적 장애의 해당됩니다.

그러니 그런 몸의 장애가 있다거나 혹은 어떤 병에 걸리지 않은 이상, 여성은 자연적으로는 절대로 탈모가 일어날 수 없습니다. 근데 그럼에도 여성형 탈모에 빠져 괴로워하시는 여성들이 대단히 많습니다. 왜 그럴까요?



 맨 처음 제가 쓴 윗 글을 떠올려보세요. 제가 저 첫글을 먼저 열거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바로 '영양소 부족' 때문 입니다. 만약 병도 아니고 장애도 없는데, 본인이 여성임에도 탈모가 왔다고 한다면 바로 '영양소 부족' 때문일 확률이 99.99999999999...% 입니다.



 현대인에겐 영양소가 부족하다. 영양소 결핍에 시달린다. 라는 글을 읽으셨을 때, 또 그런 기사를 보셨을 때 별다른 감흥이 없으셨을 겁니다. 나와는 전연 상관없는 일처럼 느껴지셨겠죠. 그런데 실상은 절대적으로 상관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영혼으로만 살아가는 존재가 아닙니다. 먹어야 사는 존재가 바로 여러분이며, 여러분들이 먹은것들이 심장의 연료가 되고, 세포재생의 재료가 되고, 혈액순환을 하는 것들이고, 여러분 자신을 만드는 겁니다.

 즉 여러분은 여러분이 먹는 그 존재가 됩니다. 그런데 영양소를 부족하게 먹는다면, 그 영양소가 부족한 상태의 몸과 존재가 되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나타나는 대표적인 질환이자 고통중 하나가 바로 '탈모' 입니다. 특히 여성들은 영양소 결핍이 유달리도 심합니다. 여성들이 최근에 가장 많이 시달리는 유방이나 갑상선에 문제와 병도 결국 영양소 결핍과 일정부분은 관계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영양소 결핍 따위 뭐 대단한 거라고, 영양제가 뭐라고 하는 생각이 드시나요? 영양제 몇 만원으로 막을 수 있는 가래(영양소 결핍으로 인해 생긴 질환과 병과 장애따위를)를 나중에는 몇 천만원의 수술비와 진료비로 나가게 되는게 비일비재한 세상 입니다.

그리고 이런 어이없고 무지한 현상 중 대표격이 바로 '여성형 탈모' 입니다.

도대체 무슨 여성이 피부과에 가서 탈모인지 확인을 받고, 탈모 클리닉에 가서 진찰하고 치료 받는데 무슨무슨 테라피를 받으면서 수십만원에서 어쩌면 몇백만원까지 쓰고 계십니까.


다시 반복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여자는 절대로 탈모에 걸릴 수 없습니다. 여자에게는 탈모 유전 따위가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여성형 탈모가 왔다는 것은 님께서 장애가 있다거나, 어떤 병이 있다거나. 혹은 그도 아니면 '영양소 결핍' 상태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현대의 여성들이 제대로 된 끼니를 잘 챙겨먹지 않아 영양소 결핍에 가장 시달리고있다는 담담한 현실을 보건데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여성형 탈모가 그렇게 특별하거나 특이사항으로 보이지도 않습니다.

님께서 장애도 없고, 병도 없는데 탈모가 왔다면, 영양소 결핍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루 매 끼니를 골고루 영양소를 챙겨 먹을 수 있겠습니까? 귀찮기도 하고 그렇게 바쁜데 말입니다.

 그러니 영양제를 챙겨 먹는 겁니다.

장담컨데 종합비타민, 비타민B 컴플렉스, 종합 미네랄. 이 세개만 챙겨드셔도 머릿털 다시 송송송 자라나실 겁니다. 훤해진 정수리 한가운데가 다시 빽빽하게 검은색으로 색칠 되실 겁니다. 이건 절대적인 사실관계 입니다. 그럼에도 머리가 자라나지 않는다면 진짜 병에 걸리셨거나, 제대로된 영양제로 제대로 음용하지 않았기 때문일겁니다.

 제가 여자도 아니고, 또 이를 연구하거나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흔하고 흔한 누구누구들도 아니고, 단지 선의에서 이런 사실을 오픈공개하는 것 뿐이므로, 그래서 정확히 어떤 비타민을 얼만큼 음용해야 하는진 잘 모릅니다. 단지 이론적 사실들을 열거해 알려드리는 겁니다.


 그럼에도 충분히 상식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바는


일단, 국내 영양제는 절대 사서 드시지 마십시오. 국내산 영양제는 흡수율을 기대하기 힘들다고 개인적으로는 생각합니다. 아이허브 에서 해외 영양제 구매해서 드십시오. 구글에서 아이허브 회원가입 방법과 구매방법을 검색하면 아주 친절하게 설명되어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해외 영양제는 권장량을 한참 초과한 많은 비타민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탈모에 영양소가 가기에 충분합니다. 국내영양제는 비싸긴 어마어마하게 비싼데 함량은 정말 미비합니다. 그래서 절대 비추입니다. 탈모때문만이 아니라 그냥 건강 생각해서 드실때도 그냥 아이허브에서 구매해 영양제를 드세요.


'종합비타민, 비타민B 컴플렉스, 종합미네랄' 사서 드시고 여기에 '오메가3' 정말 탈모를 확실히 극복코자 하신다면 '비오틴 5000mg' 까지 곁들여서 같이 음용하세요. 그럼 장담컨데 여성형 탈모 극복되실 겁니다. 참고로 그냥 아이허브에서 가장 잘팔리고 인기있는 영양제로 아무거나 마음에 드시는걸로 사서 드시면 됩니다.



 #주의사항

아이허브에서는 그 달마다 총 6개 이하, 15만원 이하로 구매하셔야 합니다. 그 이상 구매하시면 통관에 걸립니다.

그리고 자기 몸에 맞는 영양제라는게 있습니다. 자기 몸에 맞는 영양제가 있고 맞지 않는게 있는데, 사서 드셔보기 전까지는 그걸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만일 영양제를 샀는데 그거 먹고 어떤 부작용이 일어났다 하시면, 뒤도 돌아보지 마시고 아까워하지 마시고 버리거나. 아니면 주변 사람에게 선물로 그냥 주세요. 다른 이들에겐 부작용이 안나타날 수 있습니다.

많은 영양제인(?) 이렇게 자기몸의 일명 마루타 실험을 하면서 맞는 영양제를 찾아 복용합니다. 만약 처음으로 산 영양제들이 자기 몸에 맞고, 부작용도 안나타난다면 좋은겁니다. 그거 계속 복용하세요. 그리고 영양제를 너무 많이 사서 복용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영양제를 너무 많이 사서 먹으면 간에 무리가 올 수 있습니다. 그러니 탈모가 나으셨다면 앞으로는 건강을 위해서 탈모 예방 차원, 질병 예방 차원으로 그냥 '종합비타민, 오메가3, 유산균'이 세개만 드셔도 충분할 겁니다.




# 2020.05.19일 추가 내용
국내외 전 세계 영양제 고수들이 이용하는 '아이허브'라는 세계적인 영양제 판매 사이트가 있습니다. 해외직구 한번이라도 해보신적 있으신 분들은 정말 간편하고 쉽게 이용가능한 사이트 입니다. (안해보셨더라도 구글에서 검색해서 하시면 쿠팡보다 더 쉽게 회원가입하실 수 있습니다) 제가 여기서 설명한 영양제들도 전부 저는 '아이허브'에서 구매한답니다.

그렇지만 제 추천인 코드를 입력해주시면 입력해주신 분도 영양제 할인을 받기 때문에 이것보다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제도도 없다고 봅니다. 어차피 사는 영양제 서로에게 도움이 되면 좋겠죠? (여러분에겐 10% 할인, 저도 이곳에서 주문할 때 5%의 할인이 들어오는 제도 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에게 더 도움드리고자, 제 코드를 이곳에 굳이 기제하니. 현재 많은 이들이 제글로 인해 여성형탈모를 완치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기부개념으로라도 '아이허브'에서 영양제를 구매하실 때 제 코드를 입력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 추천인 코드는 ALL2624 입니다.


구매하실 때, 저 빨간색 창 안에 제 추천인 코드를 입력해주시면 됩니다.
뭔가 상업적인 느낌이 들어 왠만하면 남들 쉽게 다 홍보하는 아이허브 코드도 조심스러워 추천못했지만, 이젠 제 진심을 믿어주시는 분들이 댓글에 많이 나타나시는 것 같아.

서로가 서로에게 더 선한 도움을 주고 받기 위해 이렇게 추천인 코드를 공개합니다.
부담스러워하지 마시고, 하기 싫으면 안해주셔도 됩니다. 저는 그저 모두의 고통이 조금이라도 더 경감되었으면 하고 여전히 바라는 마음이 더 큽니다. 감사합니다.




2020년 5월 28일 목요일

#그 소설의 문체로 쓰는 감상평(2) :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 사탄탱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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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그 소설의 특정 문체로 쓰는 감상평은 머리에 더 남고, 기억에 더 남을 것 같아. 좀 더 의미도 있고, 재미도 있고 말야. 아님 말고.



#그 소설의 문체로 쓰는 감상평(2) :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 사탄탱고



 종소리가 들렸다. Sysout은 게슴츠레 뜬 눈을 반죽하듯 비비며 모니터를 응시 한다. ('무슨 뜻인가!') 어떻게 써야 하나 궁리해보지만, 궁리해도 소용 없을 듯 하다. (문체가 보통 문체가 아니기 때문인데, 따라해도 따라한게 아닐게 될게 뻔하니 차라리 시도 조차 않는게 좋을지 모르겠다) 그러니 마음속에 품고 있는 이 부질없는 일종의 희망은 군화발에 낀 진흙 마냥 긁어내 던져버리고 어설픈 흉내를 길게 하는 것 보단 짧게 침을 뱉듯 내뱉고 내빼는게 산책일 것 같다. Sysout은 그저 그 외로운 소녀가 가장 인상 깊었고 안타까웠다. 어떻게 그 불쌍한 소녀에 대한 세밀한 묘사와 전개가 가능한지 놀라울 따름이고, 그 세세함 만큼 가슴 저밈도 크게 느껴진다. '그래! 사실 이런 훌륭한 심리적 묘사가 이 책의 명성을 만든것이지! 그리고 그 능력과 재능이 이 작가에게 있는 것이고!' 거미줄에 걸린 나비가 발버둥치며 자신의 운명을 체념하다 마지막 발악을 하고 몸을 튕기듯 나 또한 자판을 튕겨본다. - "세상에! 이렇게 인간 본성을 꿰뚫는 책도 드물다고!" -
 종소리가 들렸다. Sysout은 게슴츠레 뜬 눈을 반죽하듯 비비며 모니터를 응시 한다. 그는 쉬지않고 자판을 두들기며 순간순간을 기록하고 있다. 처음 부분만 좀 지루하고, 읽어나갈 수록 깊게 몰입되어 빠져들게 하는 대단한 매력의 소설이였다. 'Sysout은 이제 마지막 문장을 쓰고 글을 마친다.'


#그 소설의 문체로 쓰는 감상평(1) : 윌리엄 포크너 - 소리와 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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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읽었다. 그런데 책만 읽었다! 라고 끝내기엔 아쉽고,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기에, 일단 인간인 나 또한 독서를 통해 느낀 감동과 감상은 허공에 떠다니는 방구 마냥 곧 분해되어 사라질게 뻔하다. 그러니 나도 남들 다하는 감상평 일명 독후감을 써서 이 사이버 공간의 유물로써 후대에 전달해주기로 했다. 근데 그냥 쓰는 독후감은 재미가 없어도 상당히 없으니, 내가 읽은 책의 문체를 흉내내어 감상평을 남겨보기로 한다. 왜? 독특하니까. 그리고 독특한건 그 자체로 의미 있으니까.



# 그 소설의 문체로 쓰는 감상평(1) : 윌리엄 포크너 - 소리와 분노



 2010년 / 5월 / 29일

 시계를 본다. 오전4시 38분이다. 나는 이 이른 새벽녘에 감상평을 쓰기 위해 의자에 앉았다. 타닥이는 타이핑 소리와 눌러지는 자판의 감촉이 누를적마다 새롭다. 캐디! 이 책은 내게 캐디! 정도의 의미를 갖고 있지는 않다. 푸른 하늘이였다가 비가 내리는데 처음엔 작게 내렸다 점점 크게 내리기에 조급함이 점차 증폭되었다. 소리와 분노? 이 책? 이 책을 책장에서 꺼낸다 언젠가 한번 이 책이 대단한 책이라는 이야기를 들은적이 있다. 
나는 나의 부지런히 움직이는 그림자에 다시 그림자를 씌우며 글을 마저 쓰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의 제목 부터가 일반적이지 않는데? 그리고 윌리엄 포크너? 난생 처음 듣는 이름이라니까. 그래도 왠지 끌리는 걸? 그리고 대단한 책이라고 호평이 자자 했으니까. 일단 읽어보면 알겠지.
재밌다. 새롭다. 일반적이지 않다. 미쳤지만 천재인 과학자가 실험을 하듯 언어적으로 실험하는 윌리엄 포크너의 그 용기와 시도에 절로 박수가 쳐진다. 이게 진짜 소설이란 생각 마저 든다. 당신에게는 이런 소설이 있나? 너에게도 너에게도 이런 소설이 있나? 반납일은 언제 언제 까지 입니다. 설마 실망스러우면 어쩌지? 새롭다 못해 사실상 처음 맞는 문체와 전개 방식에 어안이 벙벙 하다 못해 약간의 분노가 치밀어 오를 수 있다. 그렇지만 이는 그저 순전히 기우일 뿐이고, 조금만 더 인내심을 갖고 읽어나가다 보면 오히려 그 새로움의 감동을 받는 순간까지 온다. 단지 새롭다는 이유만으로 걸작이라 할 순 없어 그렇지만 새롭다는 것만이 걸작의 이유 중 하나는 될 수 있어 애초에 이 책은 100년전에 나온 책이라고 새롭고 뭐고 할것도 없어 원래 이런 류의 포스트 모더니즘적인 모든 것들을 싫어했는데 말이야 그런데 그런데! 물론 모든 소설이 그렇듯 언제나 케바케다. 내게 좋은게 항상 모두에게 좋을 순 없다. 그리고 모두에게 좋은게 내게 좋지 않듯이, 그렇기에 나 또한 이 책이 모두에게 좋다고 주장하진 않을거다. 다만 분명한 것 한가지는 자신의 시야와 사고의 가짓수에 한 가지를 더 추가하고자 한다면 필히 읽을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인내심을 갖고 읽어야해 인내심이 없고 그렇게 책을 좋아하지도 않는다면 읽으면 안돼 정말 실망하고 어쩌면 화를 낼수도 있어 그러니까 자신이 그렇게 책을 많이 읽어본 사람이 아니라면 왠만하면 읽지 않는게 좋아 이 책을 읽으려면 마음 단단히 먹어야 할거야 그리고 이 책을 읽고 다시 이 감상평을 읽을 땐 무릎을 탁! 치며 미소짓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제 새로운 시각을 서로 공유하는 사이니까. 


2020년 5월 18일 월요일

#제가 먹고 완치한 영양제 리스트 공개!






 제가 '만성 두드러기'라는 증상을 생에 처음으로 앓고 나서부터 저를 포함한 우리 모두가 이 난치성, 즉 불치병 피부질환으로 인해 극단적인 고통을 받아왔습니다.

 병원을 가도, 한의원을 가봐도, 몸에 좋다는 그 어떤 인터넷 글을 탐닉해도 전혀 나아지지 않고 정말 상상을 초월할 이 두드러기의 고통을 무력하게 직면한 저는, 스스로 논문을 찾고 읽어보며 해답을 찾았고, 실제로 제 자신에게 제가 알아낸 영양학적 지식을 바탕으로하여 그 불치병으로부터 완치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로인해 정말 기쁜 마음으로 여러분들에게 이 정보를 공유한지 어언 1년이 넘어가고 있습니다.

 정말 많은 분들이 제 글을 읽고, 기적적으로 두드러기를 완치하셨습니다. 1년이 지난 지금까지 단 한분도 만성 두드러기가 완치되지 않았다고 하신 분 없습니다. 제가 대단해서 그런게 아니라, 그냥 정말 간단한 영양학적 지식만 있다면 누구라도 쉬이 해결할 수 있는 질환이였던 것입니다. 

 처음에는 의심의 눈초리를 번뜩이는 댓글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정말 순수하게 봉사하는 마음으로 그 어떤 상업적이고 홍보나 광고 비슷한 느낌의 문장하나도 쓰지 않기 위해 조심했습니다. 그래서 심지어 사람들이 원하셔도 제가 먹었던 영양제도 알려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많은 분들의 후기댓글이 제 마음을 증명해주셨고. 이쯤되면 공개해도 되겠다 싶어. 이렇게 공개합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상업적인 혹은 홍보하는 여타 쓰레기 같은 사람들과 동일시 되고 싶진 않기 때문에 어떤 브랜드의 어떤 영양제를 먹었는지는 절대 공개하지 않겠습니다.

그냥 간단합니다 '아이허브'에 가셔서 해당 영양제 중 가장 많이 팔리고 인기 좋은 영양제 사서 드시면 됩니다.


 아! 그리고 더 부연설명하자면 영양제를 먹고 치유한 현재의 1년동안 두드러기 손톱할톨도 나지 않고 계속 건강하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오히려 코로나가 더 무섭죠 ㅎㅎ



 제가 먹고 효과를 본 영양제

1. 비타민C 1000mg
2. 비타민B Complex (비타민B군 전용 비타민)
3. 멀티 미네랄 (미네랄 전용 영양제)
4. 오메가3 
5. 유산균 (유산균은 300억 500억 이상으로 사실 필요 없습니다. 저는 100억 미만 복용 했습니다.)
6. 퀘르세틴
7. 메티오닌
8. 종합비타민
9. 비타민D 5000IU 이상
# 붉은 글씨로 체크한 건 제가 체감상 가장 크게 좋다고 느꼈던 영양제 입니다. 그런데 제가 하나하나 따로 실험하며 복용하질 않아 이것만 먹어도 된다! 하는 확신은 솔직히 못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이 영양제 라인업들은 만성 두드러기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일반 사람들이 건강을 위해 영양제로써 가장 많이 복용하는 영양제들입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어느 브랜드의 어느 영양제를 복용했는지 궁금해하시는 분들에게 솔직하고 과감하게 그냥 터놓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국내영양제'는 왠만하면 비추천 입니다.왜냐하면 국내영양제는 전부는 아니지만, 대게 GMO와 알레르기 성분으로 만드는 데다가, 정확한 검증조차 확실히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있어, 심심찮게 국산 영양제 복용하시고 사망하신 분들이 간혹 나옵니다. 여러분들 중에 그런 뉴스기사 보신분들도 계실겁니다.
* 물론, 모든 국내영양제가 그렇다는 뜻이 절대 아닙니다. 잘찾아보시면 괜찮고 안전한 국내영양제도 분명 있습니다. 이는 단지 저의 주관적 의견임을 다시 한번 밝힙니다. 

그에 비해 해외에서 구매하시는 영양제는(특히, 메이커 브랜드) 어지간하면 이런 문제에서 자유롭다고 보시면 됩니다. 아니 그냥 '아이허브' 사이트 가셔서 회원가입 하시고 구매해서 드십시오. 구글에서 '아이허브 회원가입' 방법 검색하셔서 그대로 따라만하시면 10분이면 회원가입하고, 네이버쇼핑몰 보다 더 쉽게 이용가능 합니다.

그러니 그냥 아이허브 가셔서, 제가 추천한 해당 영양제 검색하시고 가장 잘팔리고 인기있고 마음에 드시는거 사서 드십시오. 왠만하면 다 또이또이 합니다. 국내 영양제나 유명하지 않은 해외 메이커만 아니면 됩니다. 그런데 그에 대해 잘모르시는 분들도 계실테니 그런 분들은 그냥 아이허브에서 구매하시면 속이 편합니다. 물론 쿠팡이나 다른 해외직구에서 구매하고 싶으신 분들도 메이커만 확인하시고 구매하십시오! 

 이 글을 읽고 계신 당신의 질환이 깨끗이 치유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모두의 고통이 조금이라도 경감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 2020.05.19일 추가 내용
국내외 전 세계 영양제 고수들이 이용하는 '아이허브'라는 세계적인 영양제 판매 사이트가 있습니다. 해외직구 한번이라도 해보신적 있으신 분들은 정말 간편하고 쉽게 이용가능한 사이트 입니다. (안해보셨더라도 구글에서 검색해서 하시면 쿠팡보다 더 쉽게 회원가입하실 수 있습니다) 제가 여기서 설명한 영양제들도 전부 저는 '아이허브'에서 구매한답니다.

저는 지난 1여년 동안 굳이 '아이허브' 추천인 코드를 명시하지 않고, 선한 마음으로 해당정보를 공유만 해왔으나, 추천인 코드라는게 무슨 대단한 홍보나 어떤 광고가 아니라, '아이허브'에서 영양제를 구매하시고 추천인 코드의 제 코드를 입력해주시면 서로가 영양제를 살때 할인받는 어떻게 보면 품앗이 개념의 별거아닌 제도 입니다.
(참고로 아이허브에서 구매하실 때, 영양제 갯수는 6개 이하, 15만원 이하로 주문하셔야 합니다. 그 이상으로 추가 주문하시면 통관에서 걸립니다.)

그렇지만 제 추천인 코드를 입력해주시면 입력해주신 분도 영양제 할인을 받기 때문에 이것보다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제도도 없다고 봅니다. 어차피 사는 영양제 서로에게 도움이 되면 좋겠죠?

그래서 여러분들에게 더 도움드리고자, 제 코드를 이곳에 굳이 기제하니. 현재 많은 이들이 제글로 인해 만성두드러기를 완치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기부개념으로라도 '아이허브'에서 영양제를 구매하실 때 제 코드를 입력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 추천인 코드는 ALL2624 입니다.


구매하실 때, 저 빨간색 창 안에 제 추천인 코드를 입력해주시면 됩니다.
뭔가 상업적인 느낌이 들어 왠만하면 남들 쉽게 다 홍보하는 아이허브 코드도 조심스러워 추천못했지만, 이젠 제 진심을 믿어주시는 분들이 댓글에 많이 나타나시는 것 같아.

서로가 서로에게 더 선한 도움을 주고 받기 위해 이렇게 추천인 코드를 공개합니다.
부담스러워하지 마시고, 하기 싫으면 안해주셔도 됩니다. 저는 그저 모두의 고통이 조금이라도 더 경감되었으면 하고 여전히 바라는 마음이 더 큽니다. 감사합니다.





니체와 불교, 멍청한 너무나 멍청한 !




 모르는 사람은 모르고, 관심 갖는 사람만 관심 갖는 철학적 사건이 하나 있다.

 그건 바로 니체와 불교와의 관계다. 왜냐하면 니체는 본인이 '유럽의 부처' 이며, 자신의 철학을 '유럽의 불교철학'이라 이야기 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니체라는 인물 자체가 서양철학사 내지 현대의 인류 지성에 있어 가장 유명하며, 가장 토대가 되는 사상가이기에 니체에 이러한 주장은 불교권 국가에선 당연 지대한 관심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었고,

 그래서 마치 서양철학과 서양지성의 숟가락이라도 얹어 불교의 위대함을 더욱 부풀려보려는 듯, 니체가 불교를 인정하고 높이 평가했고, 그의 핵심적 사상인 '초인 사상'이 바로 불교의 해탈과 같은 것이며, 니체의 주장대로 니체에 사상은 불교와 유사하다 못해 동일할 것이므로, 불교는 서양지성의 대표격도 감탄하고 찬미한, 서양의 이성적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한 참으로 위대한 종교다! 라는 주장, 주장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져 나오며, 아직도 간간히 이러한 의견과 주장이 학계에선 제시되고 있는 형국이다.

 과감하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러한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사실도 아니며 사실인적도 없는 비루하고 무지한 종교적 신앙과 닮은 헛소리다. 

 이유는 이러하다.

 애초부터 니체는 불교에 대해서 잘 모른다. 200여년전 서양에 불교가 번역되어 전파되어 쇼펜하우어를 위시한 역사적 지성들이 이에 절대적으로 영향받은건 주지의 사실이다. 당시 유럽에선 불교의 사상이 유행이였다. 그렇지만 문제는, 지금처럼 정보가 모두 공개되고 공유되어 있는 세상이 아닌, 그들만의 리그. 즉 정통한 불교 전문가의 어떠한 옳은 지도 한자락 하나없이 불교는 그저 그 나랏말로 번역되어 전파만 된 수준이였기에 쇼펜하우어를 비롯한 많은 당시의 유럽 철학자들은 자신들의 오래된 그리스 철학-그리스도적 시각으로 접근한 잘못된 해석으로 불교를 이해하게 되었고, 이러한 오용, 오해, 불이해가 쇼펜하우어를 시작으로 니체와 그의 후학들, 버드런트 러셀이든 비트겐슈타인이든, 프로이트든 에게도 그대로 유전되기에 이른다. 

 실제로 니체는 대학생 학부시절 불교관련 강의를 몇 개 듣거나, 쇼펜하우어의 잘못된 불교 이해로부터 공부하고, 불교 번역책 몇 권따위를 읽은게 전부다. 공부량만 놓고 봐도 겨우 강의 몇 강 듣고, 책 몇 개 읽는 수준으로 어떻게 불교를 이해할 수 있겠는가? 니체가 아무리 천재라 해도, 세상에는 고작 책 한두권 읽고 그 분야의 대가가 될 수 있는 천재는 역사적으로 존재한적이 없다. 그리고 니체는 그걸 가능하게 할정도로 그리 대단한 천재도 딱히 아니다. 여기에 심지어 그가 읽고 공부한 그 불교에 대한 공부도 무지와 오해로 비롯된 수준낮은 불교 해석서 였다. (대표적으로 절대 다수의 학자들은 쇼펜하우어가 불교를 잘못 이해했다고 인정하는데 그 쇼펜하우어의 잘못된 불교이해가 니체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주었다.)


 그러니 니체는 불교를 이해하지 못했다. 불교가 뭔지도 모르고 그가 알고 있는 불교라는 건 사실 불교라기 보단 유럽인들이 제 입맛대로 각색한 불교 판타지 소설에 가깝다. 

 그리고 이러한 잘못된 불이해를 바탕으로 그는 자신을 '유럽의 부처'라 주장하고, 자신의 철학을 '유럽의 불교'라고 주장해버렸다. 그는 도대체 무엇을 근거로 자신을 유럽의 부처라 주장했는가? 별 것 없다. 단지 무려 2500년전 인도의 고타마 싯타르타라 하는 역사적 인물이 신을 부정하고, 영혼을 믿는 잘못에 대해 설파하며 그런 상상적 매개물이 아닌 자기 스스로로 부터에 인간실현을 주장했다는 실증적 측면 때문이다.

 왜냐하면 당시 니체의 시대에는 아직도 그리스도교가 전체적인 사회상이였지만 - 심지어 니체의 아버지는 목사였다. - 뉴턴과 다윈을 필두로 과학의 합리적 사고라는 새로운 시각의 등장으로 인해 그리스도교가 윤리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점점 몰락해 나가는 시점에서 새로운 인류 통합의 사상이 절실히 필요했기 때문에, 이런 절박한 시점에서 그들이 새로 접하게 된 이 불교철학이야 말로 그들에게 정확히 알맞고 필요한 신사상이였다. 그리고 이를 무려 2500년 전에 설파했다는 놀라운 시사성 때문에 니체는 불교를 대단히 수준 높은 사상 이며 유일하게 가치 있는 종교라 순순히 인정한다. 그리고 이 불교로부터 니체의 철학은 절대적으로 영향을 받는다. 이렇듯 니체의 철학의 바탕은 니체 본인도 인정하듯 불교다. 

 왜냐하면 니체는 불교를 기조로 해서 불교로 부터 스스로가 인정할 수 없는 부분들에 대해 힘에의 의지, 영원회귀, 초인사상 등을 탄생시켰기 때문이다. 무엇에 대해 반하며 나온 사상들도 결국 그 무엇에 대해 영향받은 사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니체는 자신이 유럽의 부처이고, 자신의 사상을 유럽의 불교라고 천명한 것이다.


 그렇지만 문제는 역시나 정말 안타깝고 우습게도, 니체 본인은 불교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제대로 이해 못한 불교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철학을 전개해 탄생시킨 뒤 자신을 유럽의 부처라 칭하는 이 사람을 보라. 참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황당한 일이 유럽과 전 세계의 이성과 지성의 토대가 되었다!)  

 그럼 니체는 무엇을 잘못 이해했는가? 
먼저 이를 알려면 최소한의 불교 철학과 사상을 알아야 한다. 그 최소한의 기본 사상이란 바로 무상, 고, 무아이다. 니체는 이 무상,고,무아 중 무상과 고는 어느정도 수용을 한다. 그런데 그 다음 '무아'를 니체는 부정하며 지극히 반불교적인 태도로 엇나간다. 

 '무아'라 함은 단적으로 말해 '자아 없음'인데 자아가 없다는 이 가르침은 순수히 따르기가 매우 어려우며, 자기 소멸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까지 자아내는 일이기에, 특히 그리스도 철학(아리스토텔레스 부터 이어져온 영혼이 있고, 이 영혼은 육체보다 더 고귀하다는 사상에서 부터 이 영혼을 지옥과 천국으로 까지 보낸 그리스도 철학까지)에 절대적 영향을 받은 니체와 그 시대의 사람들은 -현대의 우리들도 마찬가지지만-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개념이였다. 

 이에 니체는 '자기소멸'이란 두려움과 그 '에고적 반발심'에 의해 결국 무아사상을 끝내 받아들이지 못하고 오히려 이로 인해 불교가 잘못되었다며 공격하고, 무아와 정반대의 개념인 '자기 자아의 절대적 힘을 이야기한 '힘에의 의지, 초인 사상'과 같은 수준낮은 궤변'을 내놓기에 이른다. -어찌 되었건, 힘에의 의지, 초인 사상이 불교에 대한 특정부분의 부정으로 부터 탄생된 것이기에 이 또한 불교의 영향으로 부터 탄생한 철학이 맞다. - 이건 마치, 기존의 사상이나 종교로 부터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개혁하여 유대교에서 가톨릭으로 가톨릭에서 개신교로 분리되어 나가듯, 기존 사상에 대한 반목으로 인해 촉발된 일종의 반항이다. 그럼에도 이들 종교를 아브라함 계열 종교라는 공통으로 묶듯, 니체는 어찌되었건 자신의 사상이 불교사상에서 부터 촉발되었으므로 자신의 철학을 '유럽적인 불교'라 칭한것이다.

 그렇지만 결국 불교의 시각에서 보면 니체는 끝끝내 '무아'를 받아들이지 못한 무지몽매하고 어리석은 범부이자 중생일 뿐이며, 결국 자신만의 그 에고적 욕망과 망상에 집착하며 고통을 더욱 증폭하며 사는 비참한 한 개인일 뿐이다. (실제로 니체는 정신병으로 고통받으며 비참하게 죽었다. ) 니체는 이제 여기서 멈추지 않고 이제는 아예 작정하고 불교사상에 정반대되는 개념들을 설파한다. '인간의 삶은 고통이다. 라는 불교에 기본 전개는 수용하면서도 불교와는 정반대되는 고통과의 대결을 긍정한다. 그리고 윤회에 대해선 '영원회귀'로 맞서며 오히려 영원히 반복되며 살아가는 것 또한 긍정해야 함을 이야기 한다. 그리고 세상이 변하고 무상한 것에 대해서도 역시나 그와의 대결로써 그리스도인과 강인한 고대 전사들을 예로 들며 강력히 맞서 싸워 극복해야함을 주장한다.

 어떻게 보면 니체는 알려진대로 반기독교적인 인물이라기 보단 오히려 반불교적인 인물에 가깝다고 볼 수도 있겠다. 그런데 이런 사람이 어떻게 불교의 철학을 계승하는 사람인가? 니체는, 불교의 철학으로부터 시작했고 불교의 철학으로부터 가장 크게 영향받은 사람이긴 하지만, 결국 불교의 반대한 불교의 탈을 쓴 반불교적인 인간이였을 뿐이다. 그러니 유사점은 당연히 있게지만 - 사실 무슨 유사점인가? 니체가 불교의 배다른 자식인데. 니체가 불교의 어떤 면에선 자식이기에 불교와 닮을 순 있다. 그렇지만 결국 배다른 자식이다. - 이렇듯 결국 근본적 그리고 결론적으로는 절대로 불교와 같지 않다. 

 솔직해지자, 니체의 철학은 결국 부처의 삼법인을 어느정도는 수용하면서도 행동방식은 정반대로 펼쳐나간 불교의 청개구리 같은 철학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니체는 삶이 부처의 말대로 무상하며, 고통에 가득하지만. 이러한 무상과 고통이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부처의 가르침은 거부하고, 지극히 (잘쳐줘야)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적인 시각으로 다시 되돌아가 행동하기로 마음 먹는다. 여기에 한술 더 떠 무아사상은 본인이 소멸된다는 두려움때문에 거부하며 차라리 에고적 욕망을 해도 더욱 강력히 하여 자신의 자아감을 강화하기로 결정까지 한다.

 니체는 기독교와 형이상학을 인간을 병약하게 만드는 현실도피라 비판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힘에의 의지' '초인' '영원회귀'와 같은 정확히 형이상학적이고 기독교적인 현실도피를 만들어내 그곳으로 도피하는 자기모순을 보인다. 그리고 자신의 에고와 자아감을 위협하는 불교의 사상 또한 잘못된 것이라 부정하고 사상적 패륜을 저지르며 비판한다. 그 이유는 니체가 불교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불교의 무아사상은 자아가 없으므로 '수동적인 니힐리즘' 적으로 산다는 게 아니라 자아가 없음을 알고 살아가므로 오히려 니체가 뜻한대로 '초인'적인 삶을 가능하게 하는 인지적 상태가 됨을 뜻한다. 그런데 니체는 이를 끝끝내 이해하지 못한다.  

 생각해보라. 사실을 정확히 알거나, 이를 인정하지 못한채로, 그래서 사실이 아닌것을 기반으로 산다면 어떻게 제대로 살 수 있겠는가? 이미 신경과학적 그리고 뇌과학적으로 자아가 없음이 증명되어서, 무아는 사실이다. (과학의 발전으로 이제 무아는 과학적 사실로 증명되어 판명되었다.)그런데 이러한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다시 심신이원론적이고 에고적인 망상에 따라 살아가야 하고, 심지어 더욱 그렇게 살아가야 한다는 이 니체의 말을 따르면서 어떻게 제대로 살아가기를 바랄 수 있겠는가? 


 고로 니체는 결국 실패 했다. 니체는 신과 함께 죽었다.


 자신을 유럽의 부처이며, 자신의 철학을 유럽의 불교라 자청하면서도, 실제로는 부처와 불교의 사상을 그 누구보다 반대하며, 사실은 그가 그토록 비판한 지극히 기독교적인 마음가짐으로 살다가 죽은 이 니체의 유일한 순기능은 그래도 불교를 조금이라도 이해해보려는 시도를 했다는 것. 이게 전부다. 결국 실패했지만 말이다. 

 그리고 니체와 불교를 교차검증하며 니체와 불교의 유사성이나 차이성을 이야기하는 사람 들에게 간단히 묻고 싶은 게 있다. 니체가 무아의 위배되는 정확히 완벽히 에고적이고 자아적인 삶을 살고, 그러한 철학을 주창해냈는데 이 이상 니체와 불교의 어떤 이야기를 굳이 전개해 나갈 필요가 있을까? 불교 입장에서 보면 니체는 그저 어리석고 멍청한 집착적이고 에고적인 인물에 지나지 않는데, 그런 그를 왜 자꾸 불교와 엮으려 하는가? 

니체의 철학이 결국 불교를 발판으로 한 서양의 고대,중세,근대 철학에 재반복, 재생산 이였을 뿐임을 그 누구보다 잘알면서 왜 그렇게 니체와 불교의 =부등호를 성립하기 위해 애를 쓰는가? 결국 니체의 철학은 불교의 탈을 뒤집어쓴 에고적인 기독교 철학 아닌가? 

상대를 굴복하고 지배하며, 힘에의 의지로 부터 인간은 긍정될 수 있다는 서양의 짐승적인 지배 사상, 곧 고대 그리스적인 사상에다 기독교적 구원에 초인이란 이름을 명명하고, 고통은 맞서 싸워 이겨야 한다는 서양의 지배적인 마음상태가 구현된 지극히 아주 지극히 기독교적인 철학을 니체는 불교까지 끄집어들어 리모델링 했을 뿐이다. 

 그러니 이에 호응하는 같은 문화권의 서양인들에게 니체의 사상은 각광받을런지 몰라도. 결국 궁극적으로 니체는 불교와 엮을래야 엮을 수 없는 인물과 그런 철학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불교사상과 기존의 기독교 사상과 그리스 철학을 제멋대로 한데 뒤섞어 만든 니체표 잡탕찌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런데 왜 아직까지도 니체의 이런 잡탕찌개를 탐내하며 한 입이라도 더 먹으려 하는가? 일반적인 사람들이라면 몰라도 자칭, 타칭 불교의 정통하다는 대가들이 이런 한심한 꼴을 보이고 있다는 것에 혐오감까지 느낀다. 

 사실 니체와 불교의 관계는 이 단 한문장으로 완벽하게 설명가능하다.
니체는 무아를 인정하지 못하고, 자아와 에고의 강화를 역설했다. 
이 문장에 조금 더 추가설명을 하자면,
그래서 니체는 자신의 자아와 에고감을 만족시키는 방향으로 불교를 재해석 했다. 
그 재해석 방법이 바로 
고대 그리스의 낙후된 철학과 기독교적인 시각을 통한 재해석이다.
그렇기에 니체의 철학을 불교의 탈을 쓴 기독교적 사상이라는 것이다. 


니체는 신이 죽었다는 그 절망적인 상황에서 불교를 새로운 대안으로 여겼으나, 결국 오랫동안 형성된 자신의 협소한 아리스토텔레스-기독교철학적 사고관에 의해 불교를 완전히 수용하진 못하고, 결국 불교를 아리스토텔레스와 기독교적으로 해체하여 재창조 해버린다. 

그래서 그는 기독교의 교조주의와 한계를 극렬히 비판하면서도 결국 기독교주의적인 자신의 사상을 불교의 재해석을 통해 재탄생하여 신의 죽음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하기에 이른다. 이로인해, 니체의 세부적인 모순점들은 일단 차치하더라도 불교를 들먹이며 결국 본인이 그렇게 혐오해마지않던 기독교적인 철학을 완성했다는 이 사실은 결국 니체의 한계와 문제점을 여실히 드러내 보인다. 마치, 부모(기독교)를 혐오하면서도 결국 부모(기독교)를 닮아가는 일반적인 사람들의 모습에 전형의 철학버젼을 니체에게 보는 것 같다. 그런 주제에 '나는 부모랑은 달라!' 하는 공허한 외침은 '나는 유럽의 부처이다!' 하는 니체의 외침과 오버랩시키며 이 글을 여기서 끝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