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챙김' 이라는 것이 우리 삶을 윤택하게 해준단다. 구글이나 페이스북에서도 한단다.
그리고 이 '마음챙김' 이라는 것이 부처님의 수행법을 서양과학에서 차용하여 체계적인
-의학적인 치료- 방법으로 만들어 교육하고 있다 하고, 여러 신뢰가능한 연구와 실험결과 실제로 '마음챙김' 이라는 것이 대단히 유의미한 결과가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고 한다.
그래? 좋다. 그 훌륭한 마음챙김을 나는 알고 싶었다. 그래서 구글과 네이버를 위시한 검색엔진을 통해 얻을 수 있고 볼 수 있는 가용한 정보들을 찾아 헤메었다.
유튜브 영상도 보고, 인터넷에 공개된 마음챙김 관련 글들도 빠짐 없이 다 읽었다. 그런데 도통 모르겠다. 그 사람들과 저 사람들은 자신이 마음챙김을 가르친다며 입은 뻐끔 거리고 글이라고 끄적인 것 같긴 한데. 어느 부분이 정확하게 문제인진 몰라도, 어설프다고 느껴진다. 그래서 도대체 마음챙김이 뭐라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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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나는 하버드 대학교 교수가 썼다고 하는, 옥스퍼드 마음챙김 관련 석사를 딴 사람이 썼다고 하는, 세계적인 언론사에서 기자활동을 했다는 사람이 썼다고 하는, 심리치료사가 수십년에 걸쳐 사람들을 치료하며 알게된것을 썼다고 하는, 심지어는 실제 미얀마의 명상센터 까지 가서 세계적인 비구에게 가르침을 받았다는 사람이 썼다고 하는, 온갖 종류의 마음챙김 관련 서적을 탐독할 수 밖에 없었다.
그 결과 내가 알게된 것이라곤 이 "마음챙김" 이라는 정의 자체가 제각각이구나. 엉망진창 이다 못해 난교하듯 어질러져 있는게 "마음챙김"이란 개념이구나. 그래서 저마다 이야기하는 바가 미묘한 것에서부터 큰 덩어리로 까지 다 다를 수 밖에 없었는데. 이건 뉴에이지 자기계발서 다음 버젼인가? 싶은 절망적인 현실 밖에는 얻을 게 없었다.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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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피상적이고, 일관되지 못한, 한 눈에 봐도 뭔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을 자아내는 마음챙김 따위 말고, 그럼 마음챙김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위빠사나에 대해 진지하게 알아보기로 했고, 나는 꽤 오랜시간 공부하여 결국 위빠사나가 무엇인지. 어떻게 하는 것인지. 왜 하는 것인지를 드디어! 이해하게 되었고. 현재의 난립한 마음챙김이 얼마나 잘못되었으며, 그렇게 오용된 오해의 정보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되었고, 되고 있고, 될 것인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나 혼자만의 앎이 아니라 모두에게 올바른 것을 공유하고자 하는 선의와 보시의 마음으로 이 텍스트를 타이핑 하고 있는 것이다.
(초기불교(위빠사나)를 이미 어느정도 이해하고 있다면 사실 당신은 이 글을 읽을 필요도 없다. 그런데 한국 불교도 아니고 초기불교를 알고 있고, 심지어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대한민국에 얼마나 될까? 나 까지 포함하면 한 1천명은 될까? 그걸 이해하고, 인터넷에서 지금 처럼 마음챙김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제대로된 정보를 알려주는 사람은 지금 현재 나 밖에 없는건 분명한것 같긴 하다.)
그리고 감히 단언컨데, 이 글을 읽으면 다른 마음챙긴 관련 서적, 영상 따위는 볼 필요가 없다. 아니 봐서도 안된다. 그 사람이 존 카밧진의 MBSR등의 과정을 정식으로 수료한 사람이 아니라면 마음챙김 강의자니 지도자라고 하면 일단 뱁새눈을 뜨고 보는게 맞다. 솔직하게 말하면 그 사람들은 진짜 마음챙김의 원리나, 진정한 목적이 뭔지 알고나 있을까? 위빠사나가 무엇인지 설명이나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장담컨데 못한다. 왜? 자신도 모르는 것에 대해선 설명할 수 없으니깐. (안다고 목에 핏대를 세우며 우길 순 있어도.)
- 아! 참고로, 왜 그사람들이 모를거라고 장담까지 하냐면, 그 사람들은 마음챙김의 원형인 위빠사나와 위빠사나를 중요 수행명상으로 삼는 초기불교에 대해서 전혀 이해하고 있는 바가 없기 때문임. 내말이 거짓인지 사실인지 궁금하면 한번 그 마음챙김 지도자한테 선정과 사마타의 차이점이 뭔지 물어보라 ㅋㅋ -
그러니 제발! 멍청한 사람들과 사기꾼들에게 그만 좀 낚이자. 마음챙김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무슨 마음챙김을 배운다는 걸까? 나? 나는 이제 안다. 그리고 내가 알고 있다는 걸 밑에 글에서 증명할 것이고, 당신이 진실한 사람이라면 이 말이 사실임을 직관적으로 알게 될 것이다. 그럼 이제 사설은 그만하고 설명해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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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단 한번이라도 마음챙김에 관련된 서적을 읽어봤다면, 혹은 그와 관련된 어떤 인터넷 글이나 유튜브 영상 따위를 봤었다고 한다면. 당신은 아마 마음챙김을 이렇게 알고 있을 것이다. - 그래도 그나마 정상적인 마음챙김 관련 정보를 습득했다고 한다면 -
1. 현재의 집중 하는 것. (현존 한다든지)
2. 있는 그대로를 보는 것.
3. 주시, 관찰, 집중하며 보는 것.
4. 담담하고 초연하게, 애쓰지 않고 생각이나 감정을 바라보는 것.
5. 그리고 호흡이나 다른 무엇에 집중하는 것.
등등..
저 말자체만 놓고 옳고 그름을 따지자면, 옳다고 할 수도 있을지 모르지만, 세세하게 따져보면 그렇게 옳지도 않다. 왜냐하면 저 주장들에는 왜 그걸 해야하는지에 대한 "목표"와 "의도" 그리고 "원리에 대한 이해"가 결여되어 있고, 불완전한 설명이기 때문이다.
그럼 저 행위를 하는 목표가 무엇인가? 한가지 생각과 감정, 느낌에 집어 삼켜짐에서 벗어나 그것을 객관적으로 바라 보게 됨으로써 -유식한 말로는 메타인지를 키운다든가- 그러한 스트레스로부터 벗어나 말그대로 마음을 챙기기 위해서 한다.
그런데, 최소한의 뇌과학적 지식이나 인간육체에 대한 상식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어떤 생각이나 감정을 집중하고 바라볼수록 -마음챙김의 시각으로 보든 말든- 그것은 점점 더 커지고, 강하게 뇌의 각인된다 -또 유식한 말로는, 그에 관한 뉴런만 생성된다-
그러니 덤덤하고 초연한 마음상태로 보든, 애쓰지 않고 보든, 평온한 마음과 고요한 마음으로 가볍게 보든 어떻게 보든 그것에 계속해서 의식하고 주의를 기울이는 만큼 그것은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강화된다. 이게 바로 현재 난립된 마음챙김의 첫번째 오류다.
이런 상식과 같은 지식을 알고 있었기에, 마음챙김에 관해 도통 이해가 될 수 없었다. 어떻게 이해될 수 있겠는가? 생각과 감정을 소멸하기 위한 마음챙김인데 오히려 그 생각과 감정은 볼 수록 커지고 강화된다고. 그런데 무슨 마음챙김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가? 오히려 스트레스만 더 커질 뿐인데 말이다.
그리고 실제로 저 멍청이와 사기꾼들이 주장하는 저런 방식의 마음챙김을 하면 실제로 분노든 고통이든 사라지기는 커녕 계속 잔존하다 못해 커짐을 결국 깨닫게 된다.
이는 과학적 진실이기에 당신이 반박하든 믿지 않든 아무 상관이 없다.
그럼 마음챙김과 위빠사나는 실제로 생각과 감정을 소멸시켜주거나 줄여주지 못하는가?
아니다, 분명 줄여준다. 다만 저런식으로 하면 줄지 않고 오히려 커진다. 그나저나 이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도대체 저딴식에 마음챙김을 들먹이는 자칭 전문가들은 절대로 마음이 평온해지지 못했을 것이고 그렇게 될수가 없는데, 플라시보 효과처럼 평온해졌다고 믿는걸까? 의아할 뿐이다.
그럼 어떻게 하는 마음챙김이 올바르다 할 수 있는가?
왜 생각과 감정을 바라봐야하는지, 그 "의도"를 먼저 정확하게 알아야한다. 있는 그대로 본다고 하는게 진짜 있는 그대로를 본다는 뜻이 아니다. 생각과 감정을 있는 그대로 보고, 주시하고, 주의를 기울이고, 관찰하고, 집중한다는게 정말 그 대상 자체를 관찰하고 주시하고 주의를 기울이고 집중하는게 아니다! 아니다! 아니다!!
용어정리 부터 제대로 하고 넘어가자. 위빠사나는 다른 말로 사띠라고 한다. 사띠는 알아차림이다. 그리고 그것에 원형인 마음챙김은 결국 알아차리는 명상법이다.
그러니 "알아차리기 위해 하는 거라고!" 세번 복창하자.
"알아차리기 위해 하는 거라고!"
"알아차리기 위해 하는 거라고!"
"알아차리기 위해 하는 거라고!"
그러니 진짜 마음챙김에 의도는 화나 분노 혹은 여러 망상 공상 언어적 생각등이 머릿속에서 일어났을 때 그것이 일어났음을 "알아치리는 것"이 의도이자 진짜 목표다.
그게 마음챙김이다.
그게 위빠사나다.
이해가 잘 안되나? 더 간단히 풀이해주겠다. 우리는 일상생활을 할때 자동운항장치에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맡겨놓고 그에 끌려 살아간다. 그리고 마음챙김이란 것은 그것을 알아차려 -예를 들어 호흡은 의식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되지만 의식하면 수동으로 바뀌는 것처럼-
이러이러한 생각과 감정이 있음을 깨닫고 그것에게 끌려가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그런 스트레스에서 빠져나옴 으로써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다.
그리고 당신이 그런 생각이, 감정이 있음을 알려면 그것이 있다는 걸 먼저 알아차려야 한다! 바로 이게 "진짜 마음챙김이다!"
그런데 현재 난립된 마음챙김의 방법론을 보면, 먼저 그것이 있다는걸 알아차리고, 알아차린 다음 그것에 계속 주시하고 주의를 기울여 -위에 설명한 과학적 사실로 인해- 그 스트레스에 오히려 다시 빠지게 된다. 그러니 기껏! 간신히! 도랑에서 빠져나왔는데 다시 도랑에 빠지는 꼴이다. 정말 어이가 없다. 이런걸 마음챙김이라고 가르치다니. 자기도 모르게 사람들에게 죄, 업보를 짓는 짓을 하고 있는 거다. -선의로써 그랬다 할지라도.-

??? : 그취만~ 그렇게 바라보고 관찰하라고 했단말야~ 하버드 선생님이 그랬쪄~ 빡빡이 스님들도 그랬게 말했눈뎅~ 히이잉
만약 당신에게 알아차리고, 알아차린다음 그 마음과 과정을 주시하고 관찰하라고 말한 사람이 있다면. 그리고 단지 그것으로 끝났다면 여전히 더러운 쓰레기라고 불려도 시원찮을 사람인 것 맞다.
왜 정신활동을 관찰하고 주시하라고 하는지 알고나 있나? 한번 10초정도 스스로 생각해보고 스크롤을 내리길 바란다.
정답 : 그 대상의 본질과 속성을 알기 위해서임.
그러니까 그 대상(분노, 질투, 시기, 잡념, 후회 등)을 지속적으로 고찰함으로써 그 대상의 본질과 속성을 알기 위해 지켜보는 것이다.
"뭐?! 그럼 지켜봐도 되는거네?!"
아니다. 이유를 모르고 무작정 지켜보는 사람과 의도를 분명히 하고 지켜보는 것은 천지차이로 다르다. 달라도 완전히 다른것이다.
내가 마음챙김이 뭐라고 했나? 알아차림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그렇게 주시하면서 그 대상의 속성이 무엇무엇인지를 다시 "알아차리!"기 위해서 하는거다. 그러니 그 대상이 무엇인지 그 속성을 알아차렸다면 -사실 알아차린 순간, 그 생각 감정 자체가 소멸 내지 크게 줄어들지만- 올바르게 마음챙김을 한것이다.
그런데 마음챙김을 들먹이는 절대 다수의 멍청한 사기꾼들은 이 "속성을 알아차리기 위해"서 라는 말은 쏙 빼놓고 무작정 있는 그대로 보란다. 주시하고 관찰 하란다. 이건 마치 수학문제를 놓고 그냥 수학문제만 멍청~ 하게 쳐다보는 꼴이다. 글자의 폰트를 보고, 도형을 보고, 그렇게 초연하고~ 고요한 마음으로~ 문제 그 자체만 주구장창 쳐다본다. 있는 그대로 보라고 했으니까!
그리고 머릿속은 그 문제로 가득찬다. (화나 고통이 볼수록 가득차듯이)
아니, 수학문제를 보고 그 문제의 답을 알아차리기 위해 주시하고 관찰하는거다. 그리고 그 답이란게 바로 그 대상의 속성 본질이다. 그걸 알아차리기 위해 보는거라고! 그리고 그렇게 알아차렸으면 끝이다. 수학문제를 풀었으면 다시 보질 않듯이. 호흡으로 돌아가서 호흡을 본다.
그리고 애시당초부터 그 호흡조차도 일어남과 꺼짐 (들숨과 날숨)의 속성 본질을 보기 위해 호흡을 보는 것이다. 단순히 집중하고 자칭 있는 그대로 - 문자 그대로 - 보기 위해서가 아니란 말이당.
그럼 그 속성과 본질은 무엇인가? 부처님이 말씀하신 "무상, 고, 무아" 이고. 그 대상의 고유 성질 (특징, 기능, 원인, 드러나는 모습)을 정확히 알아차려 다시 "무상, 고, 무아"를 온전히 체험하기 위해서다.
종교적인 용어 나와서 머리가 아프디~?
무슨 말하는지 모르겠디~?
그러니까 자칭 마음챙긴 전문가들은 죽어도 온전히 마음챙김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마음챙김을 설명한다는 인물들이 일관적이지 못하고 개념이나 정의가 뒤죽박죽 난장판이고, 피상적인 개념 설명밖에 못하는것이다.)
뭐 굳이 이런 Deep한 이야기 까지 할필요 없다. 어차피 우리가 불교신자가 될것도 아니고. 고작해봐야 두뇌가 좋아진다니까! 스트레스가 줄어든다니까! 하는거 아닌가? 그런데 여기까지 글을 읽고 이해했다면 알겠지만 현재 마음챙김이라고 알려진 마음챙김 방식대로 하면 오히려 스트레스가 더 커지고 두뇌는 맛이가버린다. 왜 그런지는 다시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가 이제 없으리라 희망한다.
그럼 올바른 마음챙김 방법은 어떠해야 하는가?
1. 분노나 후회와 같은 부정적인 생각 -혹은 긍정적 생각 조차도-이 일어나면 그것이 일어났음을 먼저 알아차린다.
2.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 그저 주의를 기울인다. (단지 그것이 뇌의 화학작용일 뿐이야! 아니면 이것은 내가 아니라 뇌의 작용일 뿐이야! 라고 알아차리면 그것만으로도 족하다. 이게 진짜 있는 그대로(속성, 본질)를 본다는 거다. 진짜 있는 그대로를 본다는게 아니라!!!)
3. 무엇인지 알아차렸다면 그 즉시 그것에 대한 주시를 거두고(만족스럽게 알아차리지 못했다고 생각들어도 상관없다. 계속 지켜보면 그것은 계속 커진다!!!) 호흡의 집중하든가 들려오는 소리, 풍겨오는 냄새로 돌아가 집중한다. 혹은 자신이 이미 하던일로 다시 돌아가 집중한다.
4. 여러번 몇분이라도 계속 반복하다보면 뇌가 가소성의 법칙으로 인해 실제로 변한다. 이게 바로 메타인지를 키우는 유일한 방법이자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이게 마음챙김이다.
호흡을 통한 마음챙김법
1. 배든 콧구멍이든 하나를 정해서 들숨과 날숨을 본다.
2. 들숨과 날숨의 본질을 이해하고자 -너무 애쓰진 말고- 하는 차원으로 호흡의 전체를 주시한다. 혹은 느껴본다.
3. 그렇게 호흡의 모든 것들을 알아차린다.
4. 다른 생각이나 감정이 일어나면 역시 알아차리고, -속성 본질 볼필요도 없다- 다시 호흡으로 돌아가 호흡을 알아차린다.
이렇게 하면 설령 당신이 불교도가 아니더라도. 모든 정신적인 것들과 육체적인 것들이 둘 로 나누어진 것이 아닌 하나이며, 그것이 그저 일어남과 꺼짐이 반복되는 "무상" 한 것이고, 이 것들이 내가 아닌 "무아" 라는 걸 알고, 내가 이것들을 제어하거나 통제할 수 없음을 알아서 "고(고통)" 으로 부터 벗어나게 된다.
이게 진짜 마음챙김이고, 이게 진짜 위빠사나다.
훌륭하다고 할만한 권위자들 -틱낫한 스님 이든-이 이야기하는 현재의 집중하라는 이야기는 -예를 들어 설겆이를 할때는 설겆이에만 집중하라 말씀처럼- 현재를 알아차리라는 뜻으로 하는 말이다. 진짜 온전히 설겆이에만 집중하라는 뜻이 아니다. -뭐, 제대로 집중하면 알아차리게 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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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글을 끝내겠다. 지능이 그렇게 높지 못한 사람들은 그래서 내가 주장하는 바가 뭔데? 무슨 차이가 있는건데? 라고 되물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그런 사람들을 위해 -만약에 대비해- 정말 간단하게 요약해주자면.
1. 감정과 생각의 집중하고 주시하고 초연한 마음으로 고요한 마음으로 보든 말든 주의를 기울일 수록 그 감정과 생각은 더욱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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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로 단순히 생각과 감정을 있는 그대로 -누군가는 구름으로 비유까지 든다- 바라 볼 수록 그 생각과 감정은 더욱 커진다. 그러니 이건 멍청한 불이해로 인한 오해다.
그래서 자칭 마음챙김 전문가라고 주장하는 사람들 말대로 그 대상을 진짜 있는 그대로 보려고 하면 안된다. 그것도 계속!
2. 마음챙김의 원형인 위빠사나는 사실 "알아차림" 이라고 불교전문가들은 사용한다. 사실 알아차림이라는 말이 맞다. 위빠사나는 관찰이란 뜻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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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마음챙김은 알아차림을 중점으로 하는 명상법이지, 관찰하는 명상법이 아니다. 이 진정한 "목적" 과 "의도"를 이해 못하면 1번과 같은 불상사가 일어난다. 알아차리는 것이 중점이다. 알아차리는 걸 목표로 하고, 알아차리면 그게 진짜 마음챙김이다.
마음챙김이 알아차림이라는 걸 모르고, 관찰로 잘못이해하면 알아차려놓고 계속 계속 그것만 멍청하게 붙들고 바라보는 (있는 그대로 지켜보라고 했쭈니까! 힝힝!) 대참사가 일어난다. 그리고 계속 반복해 말하지만, 볼수록 그것은 커진다.
3. 무엇을 알아차리는가? 그 본질과 속성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그 본질과 속성을 위해 마음챙김을 하는것이고 이를 위해 마음챙김이 존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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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런 목적을 전혀 이해못하고, 단순히 생각과 감정만을 지켜보라고 우기고 있으니..
진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멍청하게 수학문제 하나만을 주구장창 뚫어져라 쳐다보고만 있다. -풀 생각은 안하고- 수학문제를 풀었으면(알아차렸으면) 그걸로 끝이다. 답이 틀렸던 맞던 상관없다, 풀었으면 그 길로 다신 안쳐다보면 된다. (쳐다볼 수록 커집니다!)
4. 자신을 객관화 하여 지켜본다는 것만이 마음챙김이 아니다.
->
생각과 감정이 자신이 아니란걸 아는 것 까진 좋지만, 그걸 지켜보는 사람이 진짜 자신! 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사실이 아닙니다. 그걸 지켜보는 자신 조차도 진정한 의미로의 "내"가 아님을 아셔야 합니다. -뭐 이게 속성과 본질을 아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리고 마음챙김은 이런 깨달음을 얻기 위해 하진 않아도, 결국 제대로 한다면 이런 깨달음을 필연적으로 알 수 밖에 없습니다. 이정도의 이해도 없으면서 마음챙김 전문가라고 들먹이는 사람들 보면 안타까워요 진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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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도까지만 하고 진짜 글을 끝마치겠습니다.
마음챙김 전문가라고 자처하는 분들이 됐건, 단순히 마음챙김을 알아보고자 하는 분들이 됐건 누가 됐건. 이런 사실관계를 이젠 명확히 아시고 본인의 삶에 적용하여 실질적인 이득을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빠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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