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7월 5일 일요일

진짜 진짜 마음챙김과 진짜 진짜 위빠사나 - 아직도 남아있는 지독한 사이비 사기꾼들로부터 벗어나기 -




링크 :) 진짜 마음챙김과 진짜 위빠사나 - 멍청이들과 사기꾼들에게 속지 않는 법-
이라는 마음챙김 관련 글을 쓴지 벌써 어언 1년이 지났다. 시간이야 항상 빨리지나가고, 앞으로도 빠르게 지나가겠지만, 어째서인지 유독 이 글을 쓴 시점부터 오늘 까지의 1년이 가장 빨리 지난것처럼 느껴진다.

 그 지난 시간동안 정말 많은 분들이 이 글을 읽었고, 도움을 받으신 분도 상당히 있다고 하니, 괜시리 뿌듯하고 좋은 기분이 들기도한다. 위에 글은 마음챙김에 관한 정보가 한국의 인터넷상에선 한심할정도로 비루했기에 직접 그 정보의 항아릿속을 채우고자 쓴 글이며, 스스로의 생각을 정리할 요량도 목적으로 하여 쓰인 글이다.

 사실상, 초심자도 아닌 입문자 주제에 쓴 글이였던지라(그런데 인터넷에선 이 입문자 보다 못한 사이비가 절대 다수로 판을 친다),어설픈 점도 많고, 미숙함이 묻어나는 글이지만, 이 글이 쓰여진 의도 -올바른 명상의 정도를 소개하는 것-에는 그래도 나름 충실했다고 부끄럽지만 자평은 해본다.

그리고 이왕 이렇게 시동을 걸어, 달렸으면 이 글에 탄 승객들을 다음 정류장 까지는 확실히데려다 줘야하지 않을까 싶은 희한한 책임감에 마저 글을 이어 써보려 한다.
-코로나 때문에 가뜩이나 새로운 스트레스도 업데이트 되지 않았나? - 
그래서 최대한 힘 닿는 데까지 승객들을 다음 정류장까지 데려다 주고, 스스로 시작한 일에 마침표 정도는 찍어 보겠다. 








***** 간단한 QnA 


Q.마음챙김은 무엇인가요?
A.마음챙김이란 서양의 학자와 의사가, 스리랑카-미얀마-태국등의 상좌부불교(즉, 초기불교)의 정통 수행방법인(부처님께서 이 명상을 통해 해탈을 얻으셨다는 '호흡명상-일명 아나빠나 사띠', 즉 위빠사나)위빠사나를 서양인 입맛에 맞게 재정립하여 우울증이나 불안 혹은 신체적 고통등에 문제를 앓고 있는 환자들에게 사용하고 보급하여 효과가 있음이 -그것도 대단히!- 과학적으로 입증되어, 진지한 치료의 목적으로써, 현재 미국의 인지치료에서 각광 받으며 쓰이는 명상법입니다.
(그렇지만, 조현병이나 조울증 같은 위험한 정신병에는 왠만하면 마음챙김을 하지 마십시오. 문제가 더 커질 확률이 농후합니다. -아니 확실히 문제가 커집니다.- 마음챙김은 만병통치약은 당연 아니고, 정신치료의 대용품이 절대 아닙니다. 정신적 문제에 대한 마음챙김은 실제 검증받은 정신과의사나 최소한 박사학위 이상에 제대로 교육받은 전문가의 주도하에 이루어지는 실질적인 인지행동치료법입니다. 정신병에 대한 마음챙김, 명상은 자기 임의로 하는 그런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스스로 정신병을 치료하려는 요량으로 해서는 절대로 안된다는 것입니다. #안찾아보니 모르는 겁니다. 위빠사나를 치료도구로 사용하는 정신과의사분들도 한국에 많습니다!! 그들에게 자문을 구하고 상담을 받아보십시오.) 


Q.그럼 서양의 마음챙김과 위빠사나에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A.서양의 마음챙김은 기본적으로 종교적인 색체를 쫙 뺐습니다. 특히 업과 윤회, 팔정도와 삼학이나 5계 혹은 8계, 12연기나 사성제와 같은 종교적 이념은 가르치지 않습니다. 오로지 위빠사나를 통해 육체적으로 빠르게 얻을 수 있는 실용적인 이익의 부분에만 초점을 둔 게 바로 오늘날에 마음챙김 입니다. 위빠사나는 애초부터 단지 스트레스를 덜 받고, 좀 더 성공하고, 똑똑해지기 위해 하는 명상법이 아닙니다. 위빠사나는 사실 '윤회를 끊기 위한' 명상법, 즉 '해탈'을 목적으로 한 명상법이지, 현대의 마음챙김 처럼 30분 운동하기 수준에 생활의 질을 좀 향상하기 위한 트렌디한 요가 같은게 아닙니다. 고로, 이제 좀 감이 잡히시겠지만 마음챙김과 위빠사나는 지향하는 바가 전혀 다릅니다. 마음챙김이 단지 지금보다 좀 더 나은 마음상태가 되는 것을 위한 그 정도 수준에 것을 요구하고 노력한다면, 위빠사나는 그런 차원을 아득히 넘어서는 목표를 위한 수행방법 입니다. 이렇듯 마음챙김과 위빠사나 사이에는 정말 큰 간격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위빠사나를 종교적인 것만으로 치부하여, 종교적 명상법 이라는 이유 때문에 꺼려한다든가 거부하려 하시면 안됩니다. 솔직히 말해 진짜 불교(즉, 초기불교)는 애당초 신을 믿지 않고, 자기 자신을 의지처로 삼아 수행하여 스스로 깨닫는 실증적 방법론이기 때문에, 기독교인이 이 명상법을 하든, 이슬람교도가 이 명상법을 하든 애초부터 상관 없습니다. 다만, 위빠사나를 자신이 믿는 신과 연결시켜 이해하려는 시도는 본인의 삶에, 또 사실로써도 오류기에 잘못이 됩니다. 애당초 마음챙김 자체가 이런 종교적 문제 때문에, 불교적 교리를 싹 걷어내고, 그 명상법만 보급된 것입니다. 그러니 정 종교적인 갈등이 일어 갈팡질팡 하신다면, 마음챙김만 하시면 되고, 서양인들 처럼 윤회에 대한 부담을 지우시면 됩니다)


Q.그럼 마음챙김과 위빠사나는 얼마나 다른건가요?
A.솔직히 말씀드리면, 위빠사나가 진짜 랍스터라면 마음챙김은 가공식품으로 만들어진 랍스타 맛살 정도라 생각합니다. 어차피 랍스타 맛만 내서 당장에 혹은 현실적인 이익만을 내면 되기에 굳이 손질도 버거운 진짜 랍스타로 맛을 내진 않겠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마음챙김은 그냥 위빠사나 맛이 나는 가공식품으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맛은 비슷하지만, 본질의 클라쓰는 넘사벽으로 다릅니다.(진짜 랍스터와 랍스터맛 가공식품의 차이보다 더 큰 차이로써) 그런데 위빠사나 처럼 진짜 '윤회'를 끊기 위한 출가 수도승들에 진중하고 경건한 수행이 오늘과 내일을 이리치이고 저리치이며 간신히 살아가는 현대 사회인들에게는 오히려 맞지 않을 수 있겠죠? 진지하게 '해탈'을 목적으로 하지 않으신다면(농담이나, 과장이 아닙니다) -진짜 랍스터로 손질하고 요리해서 그걸 아침으로 먹고 출근하려 하지 않으신다면- 간단하지만 맛은 똑같이 날 수 있는 마음챙김으로 대응 하시는 게 옳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서양인들이 마음챙김으로 재가공해 만든거지만요-


Q.그럼 마음챙김으로 수행을 하면 되나요? 왠지 위빠사나보다 못한것 같은데? 
A.아닙니다. 전부 자기 생각하기 나름입니다. 정신병을 치료할 목적으로 제 멋대로 하는 게 아니시라면, 단지 심신의 안정을 위해서 하는 명상수준에 것이라면, 마음챙김으로 충분합니다. 오히려 위빠사나를 제대로된 수행처 -최소한 존경받는 스님 내지는 검증받은 명상 전문가- 에서 진중하게 수행하지 않으시면 안하니만도 못한 잘못된 결과를 얻기가 쉽습니다.
여러분이 어떤 운동을 배우신다면, 또는 인생을 건 수능 공부를 해야하는 수험생이라면, 그 운동을 알려주는 강사의 이력이나, 수능 강사의 경력과 스펙을 꼼꼼히 따져볼것입니다. 이 강사분의 경력이 어떤지 진짜 제대로 배운 분인지 등을 말입니다. 위빠사나도 이와 마찬가지 입니다. 오히려 골프나 수능강사 보다 더 경력과 실력을 따져봐야하는게 위빠사나 혹은 마음챙김 강사 입니다. 잘못된 싸이비 골프 강사나, 수능 학원 강사에게 잘못 걸리면 그 만큼에 피해를 입듯이, 잘못된 싸이비 영성술사, 마음챙김 강사에게 걸리면 물리적인 손해는 물론이고 마음까지 상당히 피폐해질 수 있습니다.(마음 상태가 크게 손상되어 회복이 안될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간곡하게 말씀 드립니다. 제발 싸이비들에게 혹해서 돈과 마음을 사기당하지 마십시오. 그냥 간단한 호흡 명상만 제대로 해도 -이 정도는 충분히 혼자서 할 수 있습니다. (단! 정신병이 있으신 분들은 치료 목적으로는 절대로 혼자 마음대로 하지마세요)- 여러분은 제대로 위빠사나든 마음챙김이든 명상이든 한 것이고, 할 수 있습니다.


Q.그럼 그 마음챙김은 어떻게 하나요?








***** 마음챙김을 하는 방법


 마음챙김을 이해하기 쉽고 더욱 용이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현대인류의 총아인, 과학의 언어로써 설명해보도록 하겠다.(여기서부터는 뜬금없이 반말체;)
현대 뇌과학과 신경과학에서 실험을 통해 증명된 사실(주류로써 이제 인정되는 사실)은

"우리가 자아, 에고라고 생각하는 것, 즉 나! 라고 하는 것은 없다는 것이다. "

에릭 켄들이란 위대한 노벨상 수상자는 자신의 저서 '기억을 찾아서' 에서 이렇게 단언한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말은 틀렸다고, 우리의 이 존재감, 에고감, 나라는 환상은 그저 뇌의 특정 부분의 작용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고, 이는 실제로도 사실로써 증명이 되었다.

누군가는 아직도 아리스토텔레스의 심신이원론(영혼과 육체는 분리되어있는데, 영혼이 육체보다 더 고차원 적이고 가치있다라는 고대의 사상)을 신봉해서, 기독교적인 사고방식으로써 -그는 기독교를 혐오한다고 주장하겠지만- 영혼은 있고! 내가 있고! 그것도 아주 제대로 있다고 주장할것이다! 그리고 유물론자들을 욕하며(진화론과 빅뱅이론을 거짓이라 욕하듯이), 내가 있다는 느낌! 그리고 내가 없다고하면 소멸될 것같은 이 극렬한 두려움의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며, 다시 심신이원론의 어두운 그림자 속으로 빠져들어가 그것만으로 만족해 하겠지만. 진실은 심신이원론이란 거짓이며, 나라는 자아감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진화적 과정에서 생존성을 높이기 위해 생성된 뇌의 전략일 뿐이다.

'나'라는 건 없다.
당신이 이를 받아들이든 못받아들이든 이것은 과학적으로 증명이 다 끝난 일이고,
만유 인력의 법칙이나 엔트로피의 법칙 만큼 분명한 사실이다.

그럼 무엇이 이 나를 존재하게 만드는가?
누가 밥을 먹고, 양치를 하고, 의지를 내고, 선택을 하고, 행동을 하는가? 내가 없다면 내가 나쁜 짓을 해도 내 잘못이 아니지 않는가?
그렇지 않다.

먼저, 당신의 행동은 그 행동을 하기전 뇌에서 이미 결정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실험을 통해 이또한 증명이 끝난 과학적 사실이다.) 그리고, 그 의지라는 것 또한 이미 결정된 결과이지 당신이 직접 선택해서 한것이 아니라는 사실 또한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지만, 우리의 진화는 그러한 '무의식적 과정'들을 '인지'하고어떤 사유와 의지와 의도와 행동이 결정되었는지를 '알아차려서 확인하고, 재선택'할 수 있는 기능을 발달시켰다. 왜냐하면, 아무리 뇌가 행위와 의지를 미리 결정해서 그대로 움직이게 한다지만, 뇌 또한 완전하지 않다. 만약 뇌가 잘못된 전략을 세웠다면? 우리는 그것을 바로잡아야 한다. 그래야 생존성을 보장 받을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우리의 행동에 대해 책임이 있다 - 얼마든지 스스로 알아차려 조정할 수 있으니까. ;즉, 자유의지에 재정의가 필요할 뿐이지, '나'가 없으므로 법적으로 처벌을 안받아도 된다. 라는건 용납될 수 없다.; 그런데 문제는 알아차려 인식하는 과정이 드물다는 것이다.>


 바로 여기 이부분 부터가 중요하다. 


뇌가, 모든 결정을 미리 해놨지만. 우리는 그 결정을 알아차려서 스스로 수정하거나 조정할 수 있다. 이 특정한 인식 부분이 우리에게 부여된 기능이고 - 이또한 뇌의 부위일 뿐이므로 엄밀히 따지면(관습에 따른) 내가 아니다. 손가락이 나인가? 발가락이 나라 할 수 있나? 이 인식 부분을 나라고 착각하는 것도 오만한 어리석음이다. 그렇지만 분명한 건 뇌에서 결정한 일들을 인식하고 의지내어 재선택할 수 있는 기능을 갖춘 뇌의 부위라는 것이다.- 이 기능이 바로 "마음챙김"을 할 수 있게 해주는 부분. 즉, "알아차림"할 수 있게 해주는, 빅터 프랭클이란 로고스 테라피에 창시자가 말한 바로 그 "틈!" "존재의 틈새다!"








어떤 꿈을 기억할 수 있는가?
생생했던 그 꿈은, 꿈을 꾸면서도 그것을 꿈인지도 모른 채, 꿈속에 사건과 이야기와 꿈속 사람들에게 이리저리 휘둘리면서 -그걸 진짜 현실이라 착각한 채- 온갖 감정을 쥐어짜이며 농락당하다 꿈에서 깬다. 그리고 당신은 꿈에서 깼을 때야 그것이 꿈이였다는 사실을 알고 안도한다. 그리고 꿈이란 우리의 현실을 모방하기에 -어떤 심리적 통합을 위해- 
꿈을 꾸면서도 꿈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그 모습이 바로 우리네 현실 모습과 같을 수밖에 없다. 우리는 꿈을 꿀때처럼, 현실을 꾸면서도 그게 현실인지 모른다.
그건 꿈속에서 정해놓은 시나리오대로 끌려가며 능욕당하는 사람 처럼,
그와 같이 현실에서도 -참고로 꿈에서 작용하는 뇌부위와 현실에서 작용하는 뇌부위가
얄궂게도 같다. 꿈에서나 현실에서나 당신은 뇌의 노예고, 꼭두각시이며, 이미 짜여진 각본의 배우와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선지자들이 이 세상은 연극과 같다고 한 것이다.- 
당신은 시나리오대로 끌려가며 살아가는 것이다.


 * 누군가는 여기까지 오면 '나'라는 게 없다는 생각에 대한 두려움과 허무감으로써 허무주의나 공허감에 빠질 수있다. 그런데 착각해선 안된다. '나' 라는 자아감이 없다는 것이지, 여러분의 이름, 존재, 그 자체가 없다는 게 아니다. 여러분은 분명 실존한다.
 단지 우리 몸에서 각자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수십조개의 세포들이 '생존'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서로 협력하고 같이 한데 뭉친 총체적인 활동으로서의 '나'가 있음으로 이해가 바뀌는 것 밖에는 없다!! 즉, 당신은 이 수십조개의 생명에 대한 총체적인 지휘자 - 맡은 바 부여받은 임무: 알아차려 인식하고 선택하는게, 심장에게 심장의 임무가 부여되듯 당신에게 부여된 임무이다- 책임이 있으므로, 더 나은 선택과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확실히 생존을 위해 이런 총합적인 사령관(전전두엽, 자아감)을 만들어 놓은건 진화적으로 영리한 전략이다. 그럼 이 영리한 전략에 따라 계속 에고감을 키우면서 살면 되지 않을까? 아니다. 괜히 진화에서 마음챙김을 할 수 있도록 만든게 아니다. 사실 마음챙김도 명상도 알아차림도 마찬가지로 진화적 산물이고, 뇌의 영리한 또 다른 전략이고 더 상위에 있는 전략이다. 당신은 이제 이게 무슨 말인지 얼추 이해했을 것이다.  -

한번 합리적인 생각을 해보자. 여러분이 눈이 가려진 채 뇌에게 이쪽 저쪽으로 질질 끌려다니면서 뇌가 만들어낸 자아감에 빠져 그냥 좀비처럼 살아가면서 '이게 나야! 이게 바로 나의 에고야! ' 하면서 만족하며 사는 지금 현실의 모습과, 그 장님 상태에서 벗어나 뇌가 나를 어느쪽으로 이끄는지를 정확히 보면서, 뇌의 조종을 거부한 채, 자신이 주체적으로 선택하여 살아가는 삶. 이 둘중에 무엇이 더 가치 있다 생각하는가? 당연히 후자일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선 마음챙김을 해야 하는 것이고, 일단 '나'라는 게 없다는 뇌과학의 상식을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도대체 뭔 수로 뇌의 연극에서 벗어날 수 있겠는가? 


자! 바로 여기에서 마음챙김의 기능 -진화적 의도대로-이 발휘되어야 하는 부분인 거다! 


우리가 무엇을 하는지를 알아차리고(뇌가 어떻게 우리를 노예화 하여 멋대로 조종하는지를 알아차리고), 그게 정확히 무엇인지를 알아차리며, 꿈 속에서 꿈이라는 사실을 알면, 더이상 꿈에 휘둘리지 않듯이, 현실도 현실이란 사실을 깨닫고 현실에(정확히는 뇌에) 더 이상 휘둘리지 않는 것이다. 노예가 해방되듯 스스로를 해방시키는 것이다.
(이것은 영적으로 뿐만이 아니라, 사회적, 육체적, 물리적, 심지어 금전적으로도, 아니 인생 전체에서 엄청난 이익이 될 수밖에 없다. 당연하지 않나?)


- 고로 이걸 당신이 이해했다면 그 두루뭉실하고 난해한 개념인 메타인지에 대해 이해한 것이다. 이게 바로 메타인지라고 하는 것이고, 메타인지를 잘하는 사람이 더욱 성공적인 삶을 산다는 것은 익히 잘알려진 사실이다. - 


 화가 나면 우리는 정신도 못차린 채 화에 끌려 분통을 터트리고, 자신의 마음을 죽이고 그 안에서 헤엄치며 허우적 된다. 그때! 내가 화가 났음을 알아차리고, 그 화에서 빠져나와 그 화라는 것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면?(즉, 뇌의 결정된 작용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우리는 더 이상 그 화에 휘둘리지 않고, 그 화를 적절히 조절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그리고 그 화가 '나'가 아니라, 단지 그 화를 일으키고 활성 중인 어떤 뇌부위에 전기적 신호반응일 뿐이라는 걸 분명히 알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화'가 '나'라는 착각을 잃어버림으로써 우리가 얻는 것은 무엇인가?
'화'가 처음에는 나 였다가 유체이탈 하듯 빠져나가 바로 앞에 객관적 개체로서 놓고,
이를 봄으로써 우리가 얻는 것은 무엇인가?


 바로 노예 상태에서의 해방이고, 자유와 행복을 위한 한걸음을 내딛으며,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스트레스를 현저하게 줄여 참되고 이익되는 삶을 사는 것. 이것이 우리가 얻는 것이다.당신은 조금 짜증이 났을지도 모른다. 마음챙김 방법을 알려준다면서 왜 이런 학술적이고 이해하기 힘든 내용들만 줄줄 풀어놔서 스크롤을 계속 내리게 만드는가 하고 말이다.

어서 빨리 간단히 -요가 동작을 배우듯이- 마음챙김을 익혀, 그냥 돈 버는데에, 스트레스 해소하는데에 쓰고 싶을 뿐이다. 그렇지 않나? 아니 그렇지않다. 그래서는 안된다. 이런 분명한 개념 설명과 이해 없이 무작정 마음챙김 명상법이니 뭐니 하고 들이밀어대니 그것은 싸이비 마음챙김이 되는 것이고, 그래서 문제가 되는 것이다. 교통법규도 하나 모르면서 도대체 무슨 운전을 하겠는가? 정말 그런 상태로 운전하다간 모두에게 엄청난 피해를 입힐 수 있는 아주 위험한 일이 될 것이다.

 내가 말하는건 최소한의 교통법규, 우리가 서로 피해 입지 않기 위해 알아야할 기본적인 개념 설명인 것이다. 당신이 어쨌든 불교적 명상법에 발을 얹은 이상, 당신은 이를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해하고 수용하고 나서 마음챙김을 시작해야 한다. 
- 명상을 떠나 이러한 과학적 지식의 습득은 당신 삶과 성장에 크나큰 도움이 될것이다. -






Q. 아잇!! 그래서 마음챙김 어떻게 하냐고!!! 뭘 해야 싸이비 마음챙김이 아닌건데?
A. 조금만 아주 조금만 더 이해해야할 게 있다. (물론 좀 길수도 있다.)

먼저, 애써서 하면 안된다. 어떤 강박에 빠져 완벽하게 하려거나, 제대로 하려고자,
당신이 언제나 그렇듯 악을 쓰면서 하려고 하면 안된다. 이건 정말 멍청한 짓중에서
가장 멍청한 짓이다. 심지어 마음을 편하게 먹으라고 말하면, 그 마음을 편하게 먹기 위해
애를 쓰고 노력하는 사람이 절대 다수다. 고요해지라고 했더니 고요해지려고 애를쓰고,
초연한 마음을 가지라니 초연한 마음을 가지려 애를 쓰고, 차분한 마음을 가지라고 했더니 차분한 마음을 가지려 애를 쓴다. 세상에 이런 바보같은 짓이 또 있을까!

그러니 당신은 마음챙김을 할 수 없는 것이다.
아니 그 어떤 고요 한자락도 경험할 수 없는 것이다. 선문답식에 두루뭉술한 추상적이고 형이상학적인 말은 하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할 걸 말해주겠다.

마음은(그러니까 뇌는) 한번에 한가지씩에만 신경과 주의와 집중을 할 수 있다.
그러니까 당신이 고요해지기 위해, 마음챙김을 하기 위해 애를 쓰는 그 괴로움에 마음과 뇌는 집중되고, 주의를 기울이고 신경쓰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전편을 읽은 사람은 알겠지만, 볼수록 커지는게 뇌의 특성이다) 그리고 그 괴로움은 더욱 증폭될 것이다.

 간단한 예로써, 자려고 침대에 누웠는데 잠이 안올때를 생각해보라. 당신은 잠을 자기 위해 애를 쓰면 쓸수록 더욱 잠을 잘 수 없다. 잠을 자지 못하자 생기는 분노와 불안 스트레스는 신경쓸수록 더욱 커진다. "애를 쓸수록 더욱 안된다" 이건 인간 삶의 법칙이다. 마음챙김을 하란다. 마음챙김을 하려고 애쓸수록 이런 자연법칙에 의해 당연히 더욱 안된다. 괴로움이 불면증처럼 커진다. 그 괴로움을 다시 억압하고 외면할 수록(당신은 그것에 지금 집중하고 있다) 다시 더욱 커진다. 악순환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간단하다. 우리가 한곳에 하나만을 인식할 수 있다면, 그런 괴로움에서 고갤 돌려 호흡으로 돌아가 집중하는 것이다. 이제 조금 감이 잡히는가? 이게 옳은 마음챙김이다. 그리고 마음의 특성상 당신이 호흡에 집중하면, 당연히 그만큼 괴로움에는 주의를 기울일 수 없다.
(케이크와 만두를 동시에 먹을 순 없으니까. 뇌는 한가지에만 주의를 기울일 수 있다.)
그러면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것은 사그라들기때문에 (주의를 기울이면 커지듯이 주의를 거두면 그 대상은 조그라든다.) 당신의 괴로움과 불면증, 불안 고통은 나도 모르게 없어진다. 바로 이거다!
- 즉 이 애씀 또한 그 애씀을 '인식하고 거기에 집중, 주의'하기에 이 애씀이 자각되는 것이다. 이 애씀에서 시선을 돌려 그냥 호흡에만 주의 집중하면, 신기하게도 이 애씀 또한 어느새 의식 저 멀리 뒤편으로 자동적으로 사라져 버리고, 자신도 모르게 호흡에만 집중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것이다. 이게 마음챙김이다. 멍청하게 붙잡고 놓아주질 못하고 끝까지 잡고 지켜보는게 아니다.그런데 싸이비 마음챙김 강사들은 손에 압정을 쥐고 꾹 손으로 쥐면서 그 고통을 지켜보라는 식으로 가르친단다. 그딴게 마음챙김 이란다! 정말 제정신이 아니다! 마음챙김은 쥐고 붙들어 보는게 아니라, 알아차리면 놓아버리고 호흡으로 다시 돌아오는 것이다.

우리는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을 때에, 다른 무엇을 더 잘 알아차린다. 우리가 처음에 호흡의 들숨과 날숨에 주의를 기울이면 신기하게도 호흡에 특성이 알아차려 진다. 예전에는 호흡에 대해 생각해본적도 없었다! 그런데 호흡에 마음을 두니, 긴 호흡도 있고, 짧은 호흡도 있고, 거친 호흡도 있고, 부드러운 호흡도 있고, 가볍거나 무거운 호흡도 있고 호흡이 모두 천차만별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게 된다."

그러다가 다른 잡념에 빠져 마음이 방황한다. 괜찮다. 호흡명상-진짜 명상-은 "알아차림"을 위해 하는 거다. 그 잡념에 빠졌다는 사실을 "알아차림!" 하는 것 자체가 명상이고, 사실 이게 진짜 명상의 순기능이고, 이런 상태는 절망할게 아니라 오히려 잘하고 있다고 스스로를 독려 해야 한다. -공수레 공수거 식으로 좋게 말하는 게 아니라, 진짜 이게 수행의 핵심이 맞다. 이걸 위해 명상 하는거다. - 그럼 그 잡념을 알아차렸다! 어쩌면 잡념에만 마음이 방황하는건 아닐지도 모른다. 분노일지도 모르고, 고통일지 모르고, 괴로움, 슬픔, 성욕, 우울등에 마음이 빠져있을지 모른다. 그래도 괜찮다. 스스로가 그 상태에 있음을 알아차린다.
(처음에 했던 개념설명을 다시 떠올려보자. 그건 당신이 아니다. 당신이 하는 것도 아니고, 그게 진짜 당신의 일부도 아니다. 그냥 뇌의 어느 부위 -편도체든 변연계든 대상회든-에서 작동한 것에 지나지 않고, 그렇게 작동하여 당신을 조종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음을 떠올려 보자. 그래서 그것이 나라고 착각하여 또 좀비화 되지 말고 알아차려 멀찍이 떨어져 보는 것이다.) 그리고 조금에 신경도 쓰지 않고, 그것이 그것이라 알아차리고 (분노, 우울, 욕정 등으로 이름을 붙여도 아주 좋다!) 알아차렸으면 미련은 훌훌 던져버리고 다시 호흡으로 돌아와 호흡을 본다. 호흡을 알아차린다.

-아마도 당신은 수만번 정도 호흡에서 다른 대상으로 왔다 갔다 할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게 마음챙김 명상이다. 좌절하거나 절망하지마라. 꾸준~하게 호흡에만 집중을 유지하는 것 뿐만 아니라, 이 또한 그에 못지 않게 훌륭한 -어쩌면 더 이치에 맞는 - 명상법이다. 왜냐하면 당신은 "알아차림"을 주 목적으로 하고 있는 것이지 "집중 명상"을 하고 있는게 아니기 때문이다. 잡념과 여러 생각들은 알아차림의 "재료"가 되기에, 이런 잡념이 없으면 "알아차릴 것도 없는 것이 되버리기에, 알아차림 명상이 아닌것이다" 이제 이해가 되는가? 괜히 당신의 마음 편해지라고 좋은 소리를 해주는게 아니다 마음챙김은 당신 마음에서 일어나는(뇌에서 임의로 결정해 멋대로 조종하는) 상태를 알아차리고(잡념이든 감정적 분출이든) 호흡으로 돌아가 호흡에 집중해 호흡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결국 호흡도 알아차림의 기본적 재료로써 쓰는 것이다. 이제 머리가 번쩍 뜨이지 않는가?) 그러니까 호흡이든, 잡념이든, 무엇이든 당신은 그것을 하고 있다고 알아차려 그것을 분명히 알면 되는 것이다!!!!- 

이제 어떻게 마음챙김을 하는지 당신은 대략적인 윤곽이 잡혔을 테니, 하나의 과정을 단계별로 상세하게 설명함으로써 이제 완전히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






가부좌를 하고 자리에 앉는다. 
(의자에 앉든, 일상생활에서 잠깐 하든 상관 없다. 서서하든 걸으면서 하든, 밥먹으면서 하든, 정말로! 볼 일을 보면서 하든 상관없다. 그래도 일단 기본적 설명을 위해 명상의 기본 자세를 필두로 시작해보겠다.)

호흡에 마음을 둔다.
(초점을 코 끝에 두건, 배의 일어남과 꺼짐에 두건, 인중에 두건 그런건 상관없다. 그러니 그런거에 너무 연연하지 말자. 우리의 집중 대상은 '호흡 경험'이지, 코 끝 경험, 배에 움직임 경험이 아니다. 호흡의 일어남과 꺼짐만 알아차리면 되니, 자기 기호에 맞게 초점을 어디에 두든 편한대로 하면 된다. ~누구는 초점을 코 끝에 두라하고 콧구멍에 두라하고 배에 두라하고 다~ 쓸모없고 필요없는 소리다. 자기한테 편하고 가장 맞는대로 하는 게 정답이다.)

호흡을 알아차린다.
(근데 왜 항상 호흡을 기본 베이스로 할까? 호흡은 항상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즉 휴대성과 편리성이 있으니까! 그래서 꼭 호흡을 베이스로 안해도 된다. 걸을 때 발끝에, 아니면 들리는 소리에, 만져지는 감촉에, 어디든 알아차림 할 수 있는 대상을 기본 베이스로 삼아도 된다. 그런데 호흡이 가장 보편적이고 편리하고, 인지하기 좋으므로 호흡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무조건 꼭 호흡으로 해야만 하는게 아니다. 일상에서 마음챙김을 하기 위해서 지금 하고 있는 움직임에 아니면 보이고 들리고 맛보여지는 것에 마음챙김 해도 되는것이다. -)

호흡의 변화나 움직임 형태 등을 너무 애쓰지 말고 그냥 자연스럽게 알아차려 본다.
(호흡이라는 게 집중해서 보면 또 신기하다. 긴 호흡이 있는가 하면 짧은 호흡도 있고, 부드러운 호흡이 있으면 거친 호흡도 있고, 모든 호흡(들숨과 날숨)이 다 똑같지 않고 각양각색이다. 이러한 신비로운 변화와 차이를 알아차려본다.)

잡념이 떠올라 마음이 호흡에서 벗어났다는걸 알아차린다. 
(이는 절망스러운 일이 아니라 우리가 고대하고 기대했던! 잡념에 대해 알아차림할 순간이고! 뇌에서 해방될 능력(뇌의 근육, 메타인지)을 키우는 기회가 될것이다! 잡념이 일어났음을 알아차리면 그것이 잡념이라는 것을 알고 -잡념이라 이름붙여도 아주 좋다- 곧바로 호흡으로 돌아와 호흡을 다시 알아차린다.)

그런데 이번에는 뭔가 다르다 너무 고통스럽다! 그 고통스러운 후회와 번민, 고민이 떠올라서 마음이 태풍을 만난 듯이 어지롭고 진정되지 않는다!!!
(괜찮다. 이는 더욱 강력한 알아차림의 주재료가 될 것이다. 이를 여전히 알아차린다. 노인이 돋보기까지 껴가며 자세히 보려고 보면 안된다. 이런건 자세히 관찰하여 볼수록 - 볼수록 커진다! - 악화만 될 뿐이다. 이것이 무엇이라고 알아차린다(그래, 고통이라고 이름붙여보자.) 고통.. 고통.. 후회.. 번민.. 알아차려 이름 붙였으면 다시 호흡으로 돌아와 호흡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얼마 후 당신은 대단한 경험을 할 것이다. 그렇게 강력한 마음의 혼란이 지금은 도대체 어디로 간거지? 하고 의아해 하거나 아예 생각조차 안나게 될 것이다. 그저 지금 알아차리는 건 아까번 들숨보다 좀 더 가벼운 지금의 들숨이다. 드디어 태어나서 난생 처음으로 뇌의 조종과 연극에서 당신은 그것이 연극과 조종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당신의 의지로써 뇌에게 놀아나기를 거부한 것이다.)

당신은 10분, 15분, 20분, 25분, 30분, 아니 단 1분이라도 이런 명상을 다 마치고 눈을 뜬다.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 버스에서, 지하철에서, 일을 하다가, 쉬는 시간에, 일상 생활중에 고통과 분노, 불쾌한 감정에서, 통증에 대해서. 어떤 상황에서건 필요에따라 이러한 마음챙김을 해본다. 간략하게 해도 좋다. 불완전해도 좋고, 명상이 만족스럽지 않아도 좋다.

왜냐하면 당신이 이 명상을 하는 이유는 "당신의 뇌가 결정한 대로의 연극"이라는 걸 "알아차려" 그것과 "동일시" 하지 않고, 이런 좀비화에서 빠져나와, 호흡이나 들리는 소리 등에 주의를 돌려 그 호흡과 소리를 알아차림으로 인식을 대체하므로써 정신적, 육체적 고통에서 벗어나고 메타인지를 키워 더이상 익숙한 고통을 다시는 받지 않을 예방법을 스스로에게 가르쳐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명상을 꾸준히 계속하다보면 이런 소기의 목적을 아득히 뛰어넘어, 더욱 강력한 인내력과 의지력을 얻고, 똑똑함과 영리함, 자기절제와 명확한 분석력과 판단력과 같은 지적능력 또한 얻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이것들은 부차적인 소득일 뿐이다.

뇌는 가소성이 대단히 큰 물질이기 때문에, 
당신은 이 명상을 꾸준히 하면 실제로 뇌가 변한다.
(PET이나 SPECT, fMRI로 뇌를 촬영해서 보면 실제로 진짜로 변해 있다!)

당신이 지금껏 당신을 괴롭혔던 정신적 문제에 앞으로는 괴롭힘을 받지 않는 뇌로 뇌가
실제로 변하고, 당신의 메타인지를 담당하는 회백질이 실제로 증가해 두꺼워져서 진짜로
전보다 똑똑하고 객관적인 사람이 되고, 여러 마음을 상하게 하는 어려움과 괴로움에 직면해도 이를 이겨나갈 인내력과 의지력이 실제로 존재하게 해주는 뇌부위의 활성화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렇게 철저한 실증, 과학적 사고관을 철저히 갖춘 서양에 의사들이, 박사들이, 과학자들이 이 마음챙김 방법을 실제 치료방법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그냥 불교라는 동양의 문화가 좋아서 환자들에게 이 방법을 쓰는게 아니다.
여기에는 대단히 중요한 시사성이 있다.
왜냐하면 이 방법을 통하면 과학적으로 당신은 당신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과학자들이 인정해주고 있다는 이 사실 때문이다.






언어와 블로그의 한계상, 아직 해야할 말, 필요한 말이 더 있음에도 (사실 끝도 없는 배움의 연속이기에 끝도 없이 설명할 수 있지만) 할 수 없는 점 양해를 바라고,

이제 마지막으로 1여년 동안 받아온 질문들을 간략하게 짚고 넘어가는 것으로 길다면 꽤 긴 이 글도 마쳐보려 한다.


< 초월명상등의 다른 명상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전혀 안좋게 생각합니다. 돈을 주면 고유의 만트라니 뭐니를 주면서 그걸 염~ 하면서 명상하라 하죠? 그 만트라 없이 개 이름이나 아이돌 이름으로 염해도 효과는 같습니다.
돈 주고 배우는 명상은 저는 정말 극혐 합니다.
명상은 돈 거래를 통해 사고 파는 매매 대상이 아닙니다.

또, 확실히 해두어야 할게, 초월명상등의 힌두교식 명상은 위빠사나 명상과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정말 단 1도 연관성이 없습니다. 서양에서 하는 마음챙김은 힌두교 명상과 완벽하게 다른 초기불교의 명상법인 위빠사나와 연관된 것입니다. 그러니 힌두교 명상이나 한국 불교의 간화선 등의 명상과 마음챙김은 완벽히 다릅니다. 이 부분을 분명히 하셔야 합니다.


<머리로는 알겠는데, '내'가 없다는 생각은 여전히 불쾌하고 기분이 안좋아요. 어떻하죠?>
기분이 안좋고 받아들이기 힘드시면 안받아들이셔도 됩니다. 명상하시는 분들은 꼭 완벽주의자 같아서, 마음을 놓는 명상을 해도 제대로 놓으려고 분주해 하십니다. 아닙니다. 마음이 불편하고 괴로우면 그렇게 하지 마세요. 왜 꼭 항상 남에 말을 따르고 의지하려 하십니까? 부처님께서도 자기 말이 받아들이기 힘들면 받아들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자기 자신에게의지하고, 자기 스스로 확립해야 합니다. 저는 그저 길을 안내했을 뿐입니다. 그 길을 걸을 것인지 말지는, 걸어도 어떻게 걸을 것인지는 모두 당신의 선택일 따름이고, 저는 당신이 옳은 선택을 할 수 있길 기도할 뿐입니다.


<혹시 채널링을 하시나요? UFO와 일루미나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답~답. 꼭 명상관련글에는 '신지학' 신봉자(라 쓰고 신지학 종교인이라 읽는)들이 가끔 찾아와 이런 류의 댓글을 꼭 남기십니다. 그러니 여기서 분명히 말합니다.
위빠사나와 마음챙김은 '대령'이니 '아트만'이니 '브라만'이니 채널링이고, 에테르니 프라하니 지구라는 학교에 배움을 위해 윤회를 했네 마네 하는 그런 사이비 종교들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고 연관성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런분들은 제발 정신과에 가서 진지한 상담을 받아보시길 강권 합니다. 비하가 아니라 이런 사유일반은 정말 위험한 정신상태로까지 발전할 수 있습니다.


< 이렇게 명상하는게 맞나요? >
제가 호흡명상, 마음챙김 명상법에 대해 상세히 이글에 써놨으니 몇 번이고 읽으시며,
참고하시면 됩니다.


< 그런데 다른 데선 이렇게 이렇게 하라는데요? 뭔가 좀 서로 달라서 헷갈리네; >
솔직히 말씀드려서 이 글에 쓴 호흡명상법은 전통적이고 스탠다드 입니다. 이 블로그에 가르침과 배치되는 마음챙김은 (사이비 까진 아니더라도) 분명 뭔가 잘못된 것입니다.
축구 하는 방법과 규칙이 어떻게 나라마다 지역마다 다를 수 있겠습니까? 옳은 명상방법은 절대로 서로 배치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쓴 명상법에 설명이 제가 발견한 것도 정립한것도 아니고, 저 또한 존경받는 대가의 말씀을 그대로 -물론 표현은 제 스타일로 해서- 알려드리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고로 여기서 제시하는 명상법이 옳습니다.
그렇기에 이 명상법과 개념들을 모든 명상의 판단 근거로 사용하셔도 됩니다.


 < 명상이나 불교 이해에 도움이 되는 책들이 있으면 소개 좀 해주세요 >
저는 개인적으로 아잔 브람의 책을 좋아합니다. 그가 쓴 모든 저서를 추천하는 데 특히
"아무것도 남기지 않기""놓아버리기" 두 권은 명상 수행자고 아니고를 떠나 인간으로써
꼭 읽어볼 충분한 가치가 있다 생각합니다. 세계적으로도 대단히 유명한 스님이라, 그가 쓴 책들은 웬만한 지역 도서관에는 모두 있고 현재도 서점에서 인기리에 판매중이기에 꼭 탐독해 보시길 강권합니다.

또 부처의 삶을 이해하고 싶다면, 틱닛한 스님이 쓴 "붓다처럼"도 꼭 읽어보세요. 소설형식인데 대단히 흥미롭고 재밌습니다. 입문용으로는 전현수 박사가 쓰신 불교관련 서적들이 좋습니다. 최근에 읽은 "해커 붓다" 라는 책도 상당히 흥미롭고 좋았습니다.

 저는 존 카밧진이나, 골드스타인, 샤론 등 서양의 마음챙김 선구자들에 책은 별로 선호하진 않습니다. 물론 당연히 다른 책들에 비하면야 훌륭하지만, 그렇게 큰 울림은 잘 못받았습니다. 더더욱이 무슨 무슨 마음챙김법! 하는 유행 쫒는 책들 또한 읽는 것 자체가 시간낭비라 생각합니다.

 제가 봤을 땐, 마하시 사야도, 파욱 사야도, 아잔 브람, 아잔 차, 고엔카 등의 검증 받은 실제 수행의 대가들이 쓴 책들이 확실히 더 좋았습니다. 물론, 마크 엡스타인의 "진료실에서 만난 붓다"와 같은 비 전통적인 불교 관련 책들도 가끔은 좋은 통찰을 주기도 합니다.

<크리슈나무니 우파니샤드니 하는 책들이나 신지학 관련 책들은 여기서 이야기하는 초기불교나 명상법과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참고로 한국,중국,일본 불교하고도 일절 관련이 없습니다. 기공이니 주역이니 하는 것들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한 글에 많은 걸 담아내려다 보니 상당히 긴 글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정말 선의의 마음으로 정성 껏 써보았으니
도움이 되신다 생각되면 주워가시면 되고, 마음에 들지 않으시면 그냥 가셔도 됩니다.
그렇지만 어찌되었건 이 글을 통해 더 이상 싸이비 마음챙김 강사에게 최소한 휘둘리며
금전적으로 육체적으로 영적으로 손해 보는 일은 없으시게 되실 겁니다.

위빠사나를 진중하게 배우고자 하신다면, 진짜 제대로 검증받은 위빠사나 명상 센터로 가서 수행하십시오. 정말 제대로 배우고 싶다면 미얀마고 태국이고 못가겠습니까?
국내에도 대단히 수승한 수행처가 많습니다. 그렇지만 검증은 본인 스스로 하셔야 합니다.
그것까지 대신 해드리긴 힘듭니다.

하여튼 이쯤에서 이제 글을 마치겠습니다.
당신의 삶에서 행복을 찾기를 희망합니다.